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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거울과 아리랑

김수린2021.07.09 15:13조회 수 4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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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거울과 아리랑 /김수린
 
 
써니를 보내던 날은 날씨마저 음산했다. 전형적인 11 월의 보스톤 날씨답게 금방이라도 눈송이가 날릴 듯 하늘은 잿빛으로 흐려있고 스산한 바람이 헐벗은 나무들과 비석들 사이로 이리 저리 낙엽을 몰고 다닌다.
하관 예배가 끝나자 10여명의 하객들은 흩어져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흰 국화꽃으로 덮여 있는 써니의 관을 물끄러미 봐라보고 있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 보니 써니의 남편인 도날드가 내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써니가 이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것 같소.”
봉투에는 서툰 글씨로 ’Pastor Wife(목사 부인)' 라고 쓰여 있었다. 도날드의 얼굴이 몹시 초췌하고 어두워 보였지만 딱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꾸깃꾸깃한 봉투 안에는 작은 손거울이 들어 있었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메모나 편지도 없이 달랑 거울뿐이다. 손잡이와 거울테에는 매화꽃 문양의 자개 장식이 정교했고, 뒷면은 도톰하게 솜을 넣어 화려한 무늬의 비단으로 덮여 있었다. 비록 오래 되었으나 조심스레 간직한 듯 고은 손때가 묻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언젠가 한번 본 적이 있는 거울이었다.
 
노인이 대부분인 작은 시골 교회에 중년의 써니와 도날드가 참석하였을때 교인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환영했다. 한 달에 한 번 설교와 예식을 담당하는 남편을 따라간 내게 써니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인사를 건넸다. 처음 인상은 조금 억세 보이는 동남아 쪽, 베트남이나 라오스 여인 같았는데 알고보니 중국에서 왔다고 했다. 2년 전에 결혼해서 미국에 왔고 몇 달 전에 보스턴으로 이사를 왔단다. 소련계 남편인 도날드는 신부로 맞이한 이 중국 여인이 동양인 목사와 연결되어 신앙을 받아들였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았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 그녀와 쉬운 단어와 손짓으로 겨우 소통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놀란 표정을 짓는 내게 써니는 어머니가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말을 전혀 몰랐는데 아리랑 노래 만큼은 발음이 상당히 정확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한국인의 혈통을 가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3세 정도가 아닐까 하고. 나는 내 짐작이 맞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서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 물어봤다. 어머니라는 말에 써니의 얼굴이 금새 밝아졌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서 내게 보여 주었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준 것을 자신이 물려받았다고 했다. 진지하게 말하던 그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거울을 들고 일어나더니 아리랑을 부르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써니는 자신이 한국인의 핏줄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알리고 싶어 애를 쓰는 듯 했다.
그 후 써니와 나는 만나면 아리랑을 자주 불렀다. 능숙하지 못한 영어 때문에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아리랑을 부르고 있을 때 만큼은 써니가 행복해 보였다. 한번은 내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는 가사의 의미를 아느냐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사람은 멀리 못가서 다리에 병이 나게 된다는 의미라고 하면서 다리를 저는 흉내를 냈다. 그녀가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올려 한 바퀴를 빙 돌리고는 내려놓았다. 키도 체구도 나보다 훨씬 큰 써니의 돌발적인 행동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한참을 같이 웃었다. 그녀는 그런 장난기로 이따금 나를 놀라게했다.
 
어느날 남편이 함께 써니네 집을 가자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는데, 화가 잔뜩 난 것처럼 씩씩거리던 써니는 나를 보는 순간 당황하면서 몹시 겸연쩍어 했다. 남편과 도날드가 대화하는 동안 써니와 나는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앞장서서 묵묵히 아파트 주위의 정원을 걷던 써니가 불쑥 돌아서더니 말했다.
”우리는 낮에 서로 싸웠는데 밤에는 그가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해요. 나는 짐승이 아닌데.”
가슴이 싸하니 아려왔다. 의사소통과 감정 교류가 안 되는 결혼 생활 속에서 그녀가 겪었을 고통과 좌절과 모욕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 싶었다.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주어야 할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나는 써니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그 후 두어 달쯤 지나서였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갔을 때 써니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얼굴과 온몸이 황달로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었고 의식도 없는 상태 였는데 취장암 말기라고 했다. 수술 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그렇게 떠나 갔다.
 
  추위에 잔뜩 굳어 있는 내 얼굴이 매화꽃 속에 들어있고 그위에 써니의 얼굴이 오버 랩되어 보이는 듯 하다. 써니는 얼마나 자주 이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았을까?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디아스포라적인 삶과, 운명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퍼부었을까? 스스로의 얼굴에 투영되는 어머니에게 답답하고 서러운 이국 생활의 한을 이야기했을까? 그러다 어머니의 음성을 떠올리며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으리라. ..
조선땅에서 중국으로 , 중국에서 미국으로, 쫒기는 듯한 삶을 살면서 아리랑을 불러야 했던 가여운 여인네들. 나는 들고 있던 손거울을 이제 막 장지에 내려 놓으려하는 관 위에 놓았다. 거울을 소유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얀 국화꽃 위에 놓인 손거울은 음울했던 풍경을 돌연 생기 있게 만들었다. 흑백 사진에 삽입된 한 송이 붉은 매화 꽃처럼 .
그리고 지금까지 참았던 함박눈이 소리 없이 거울위에 떨어져 눈물처럼 번졌다.■
김수린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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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 의사
- 현재 둘루스 소재 개인치과병원 운영
- 제2회 애틀랜타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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