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동 / 김 수린
진료실에 앉아 있던 환자가 모서리가 부러진 틀니를 내밀었다.
“틀니를 떨어트렸어요?”
“아니요 일 할때 이를 악물고 일을 하다보니 틀니가 부러졌어요.”
일반적으로 힘든 상황이나 힘에 부치는 일을 할때 이를 악물고 한다 라는 표현을 한다. 극심한 통증이나 분노를 참아야 할때도 이를 악물고 견디다 라고 말한다. 수면 중에 또는 무의식 중에 이를 앙 다무는 습관이 있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그렇게 치아에 과도한 압력이 지속적으로 기해지면 치아가 부라지거나 턱관절에 통증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빨을 악무는 과정에 의해 위 아래 전체 틀니가 부러지는 사례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40 대의 젊은 나이에 심한 풍치로 치아를 모두 발치 한 후에 완전 틀니와 임플랜트를 하며 자주 내원했던 환자다. 자주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신상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어 그가 제과 제빵사 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의아해 하며 되묻게 되었다
“과자나 케이크를 만들면서도 이를 악물게 되요?”
“그럼요, 빵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일 인데요. 여자들은 내가 케이크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머, 재미있는 일을 하시네요, 하면서 자기도 배우고 싶다고 말하죠.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설명 하기도 싫어서 그냥 대꾸도 안해요. “
그가 인상을 찌프리며 대답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새삼 내가 가졌던 제과점의 이미지가 얼마나 막연하고 단편적이었는지를 인식 하게 되었다.
고소한 커피향과 함께 진열장 안에 예쁘게 장식된 케이크와 각양 각색의 쿠키와 빵들을 고르며 나는 제과점은 그저 밝고 화사하고 유쾌한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진열장 뒤에서 누군가는 이를 악물어야 할 만큼의 스트레스와 육체적인 노동이 될 수있다는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바삭하고 달콤한 하나의 쿠키가 만들어지기까지 제빵사의 수고 이전에 치러진 과정은 얼마나 더 힘든 노동이었을까.
아마도 우크라이나 어느 밀 농장에서
땀흘려 밀 을 수확한 농부가 있고
밀이 제분 과정을 거처 밀가루가 되고 그것이 운송되어 제빵 공장까지 오는 과정에 투입된 보이지 않는 수고의 결과물이 오늘 내가 먹는 하나의 쿠키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지난해 있었던 ㅇㅇ 제빵 회사의 여직원 사망 사고가 새삼 떠오른다. 밤샘 근무를 하던 20 대 여직원이 윤전기에 끼어 사망한 안타깝고 슬픈 사고도 우리가 무심히 먹었던 빵 하나의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수선한 틀니를 받으러 온 그에게서
언제나 그렇듯 담배 냄새와 함께 달콤한 케이크 냄새가 난다.
수선된 틀니를 끼고 그가 희고 가지런한 이빨을 보이며 씩 웃었다.
치아가 없는 합죽한 노인의 얼굴이 틀니를 끼고 나니 다시 40 대의 젊은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그가 내게 보여준 환한 미소는 아마도 오늘 내 노동의 달콤한 보상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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