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연보(年譜)
석촌
집 곁에 로마 병정처럼 마음 든든하여 고맙다 인사를 건네던,
온갖 비밀들을 간직하면서도 굳게 입을 다문
노신사 같은 나무 한 그루
추위에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 올리고 싶다는 빈말에도
묵묵히 지켜보던 나무의 내력을 알 수 없을 터,
길게 누운 생목의 나이테는 수령 백 년의 연표가 선명하다
나무의 연보를 찬찬히 읽어보니 순탄한 세월만이 아니었다
태풍에 까닭 없이 머리채를 잡히고 허리가 꺾인
피멍 든 무수한 날들의 흔적이 검붉은 옹이로 남아있다
멀지 않은 세월,
나의 연보가 펼쳐지기 전 겸비한 마음으로
목향(木香) 그윽한 한편의 서사시(敍事詩)앞에 무릎을 꿇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