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오진(誤診)
석촌
수년전 부정맥 진단을 받고 마음 준비 단단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두렵진 않았지만 내 不在로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도 되고 앞당겨 죽음을 상상해 보며 신변 정리에 앞서 오래도록 미뤄온
해외여행과 고향 산천의 친구들과 회포도 풀고 옛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홀가분한 마음 한구석에 남은 숙제
시와 수필로 등단했지만 단 한 권의 시집이나 수필집을 낼 엄두가 안 났다 뭔가 흔적을 남기고 갈 유고집을
위해 글들을 교정 하며 원고를 정리 중이던 짧은 몇 개월 나와 함께 사장(死藏)될 뻔하던 문자들이 우르르
발 벗고 일어나 죽어가는 자를 위로하듯 했다 ‘괜찮다 괜찮아’ 그러니 아직 끝나지 않은 생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기 전 미완의 행간을 여행 중이다, 돌이켜보니 짧은 기간 농담 같은 내 운명, 덤으로 살아가는 지금, 참으로
유쾌한 오진이었다
-석촌의 일기 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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