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둘이 사는 우리 집은 미국 공식 공휴일이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식이 전부다. 오늘도 예외 없이 어느 식당으로 가야 하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남편이 좋아하는 라면집으로 결정 했다. 아는 분이 하는 맛집으로 처음 가는 곳이다. 라면이라면 제맛을 아는 남편이 기대반 의심반으로 들어갔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서버가 와서 주문받는다. 남편과 내가 일어로 대화하는 것을 들은 모양이다. 일어로 주문하라고 했다. 그의 일어 실력은 초보자 수준임을 즉시 알게 되었다. 화이트 와인을 시켰더니 테이블에 놓으며 ‘시로이 와인’이라 했다. 남편이 ‘시로 와인’으로 조용히 정정해 주니 웃으며 일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일본 유학을 떠나서 일어 공부를 하며 아르바이트했던 날들이 바로 지금 그녀의 모습과 같다. 서툰 일어로 용감하게 라면집에서 일을 했다. 그때 내가 언어 미숙으로 실수했던 일들은 잊었지만 당황스럽고 힘에 부쳤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라면집으로 달려가서 주문받고 음식을 손님 앞에 조심스럽게 놓던 긴장감, 생활비를 해결하려고 학교 공부보다 더 열심히 라면집을 다녔던 몇십 년 전 일이다.
그때의 소소한 실수는 기억나지 않는데 기모노를 입고 가끔 오는 일본 기생에게 얼굴에 물벼락을 맞은 일은 아직까지도 분한데 왜 그랬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때의 상처와 슬픔은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억울해도 경찰을 부를 수 없었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좁은 골목길을 직진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온 창문마저 검게 태닝을 한 검은 차가 나를 들이받아 쓰러졌다. 차에서 내린 검은 양복의 무섭게 생긴 남자가 다치지 않았냐고 묻는데 직감으로 야쿠자라는 느낌이 들어 괜찮다고 말하고 찌그러진 자전거를 몰아치며 나 살려라 도망친 경험도 있다. 그때 그들에게 끌려갔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일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을 보니 나의 과거가 낡은 영화관의 필름 돌아가듯 매끄럽지 못하게 끊길 듯 이어질 듯 슬픈 미소를 짓게한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부끄러움없이 말할 수 있는 나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나온 음식을 먹고 화장실을 갔다 나오는데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지 않은가. 궁금해서 음식 잘 먹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서버가 와서는 남편이 먹고 비운 그릇을 치워도 되느냐고 묻는다는 것이 언어 실수로 청소해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순간 동시에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잘 참고 있던 남편도 한마디 한다. ‘내가 쓰레기를 먹었나?’
계산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다시 서버가 와서 인사를 한다. 주인은 영수증의 바코드를 보고 내가 왔다 간 것을 안다고 부연 설명까지 해준다. 너무나 착실해 보이는 그녀가 젊은 날의 내 모습과 겹쳐서 생큐로 답하고 나왔다. 차를 타고 오면서도 그녀의 예쁜 실수로 웃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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