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록 울 명’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먼저 목놓아 운다. 즉,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동료 사슴들을 불러 먹이를 나눠먹기 위해 내는 울음 소리를 ‘녹명’이라 한다. 수많은 동물 중에서 사슴만이 먹이를 발견하면 함께 먹자고 동료를 부르기 위해 운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울음소리를 당신은 들어 본적 있는가? 여느 짐승들은 먹이를 발견하면 혼자 먹고 남는 것은 숨기기 급급한데, 사슴은 오히려 울음소리를 높여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문학회 단톡방에 공유된 글이다
이 글을 읽고 십여 년간 사슴의 먹이를 주고 있는 나에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이사 온 몇 년 뒤부터인지 일고여덟 마리의 사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뒷마당의 화초와 꽃, 복숭아나무의 어린줄기까지 먹었다. 매일 사슴을 볼 수 있다는 행복감과 긴 목을 빼고 먹이를 찾는 가엾은 모습에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이 사슴을 잡기 위해 쓰는 마른 옥수수 사십 파운드 한 포대를 사서 매일 주면 이 주 만에 빈 포대만 남는다. 가격은 저렴해서 부담은 없지만 먼 거리에 있는 가게에 가야 하니까 몇 포대씩 무겁게 사다 나르는 것이 쉽지 않다
일정 시간에 먹이를 뒤뜰에 놓아두면 사슴들이 찾아온다. 같이 먹자고 옆으로 끼어드는 사슴을 옆발질 하며 내쫒는 괘심한 녀석도 있다. 내가 준 것은 전체의 분량인데 먼저 먹는 사슴들이 실컷 배를 채워야 다음 대기자들이 먹는다. 최근에는 무슨 잔꾀인지 두 그룹으로 나타나 많은 분량을 전부 먹고 가버리면 나중에 나타난 그룹은 빈 걸음을 하거나 뒤뜰에서 시위를 하듯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외출을 해서 먹이줄 시간을 놓친 날은 다음 날 아침부터 앞뜰 뒤뜰, 옆집 담까지 뛰어넘나 들기도 한다. 같이 먹자고 울어대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다. 그들이 소리를 낼 때는 위험을 느낄 때뿐이다. 먹이를 주는 나조차 가까이 다가가면 거리두기를 하다가 다시 돌아와 먹는다
때로는 무거운 먹이 사다 나르기가 힘들어서 또는 너무 우리에게 의지하는 것 같아 장기간 먹이를 끊은 적도 있었다. 그러면 갓 태어난 아기사슴을 끌어다 앉혀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광경을 보고 외면할 수없어 다시 먹이를 주었다. 남편이 일하러 타주로 장기 출장을 떠나고 교통사고로 허리에 통증이 있어서 몸을 사리고 있는데 하루는 사슴뿔을 보란 듯이 놓고 가버렸다. 우리가 녹용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공짜로 먹지 않을 테니 물물교환하자는 배짱이다. 주려면 가치가 있는 큼직한 것으로 주지 비리비리한 작은 것을 주고 당당하다. 어쩔 수 없이 먹이를 사서 다시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사 가지 않는 한 관계는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행복으로 시작된 먹이 주기가 이제는 지치기도 하고 어떻게 외면해야 하나 고민이다. 그나마 남편이 옆에 있으니 내 부담은 덜하지만, 장기 출장을 가버리면 오롯이 나의 짐이다. 정이라도 느낀다면 좋으련만 다가가서 쓰다듬고 얘기라도 나누고 싶은데 먹이만 달라고 하니 괘씸하다.
우리 인간관계도 매우 흡사한 것 같다. 좋았던 관계가 짐이 되기도 하고 다투고 미위하고 등 돌리고 그러면서도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인간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밉고 섭섭한 마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 전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다.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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