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뒹굴뒹굴 여유를 즐기다가 늘어진 몸으로 안방에서 나와 일요일 점심을 먹었다. 어제 일을 마치고 사 들고 왔던 명태꼬다리조림과 겉절이김치를 어묵국에 밥을 말아 꾸역꾸역 넣다 보니 빵빵한 배 속이 거북했다.
운동복을 챙겨서 피트니스로 갔다. 한가한 시간이다 보니 운동 애호가들도 적어서 기다림 없이 하나둘 운동기구들과 씨름을 하며 쌓인 열량을 줄였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사우나 실에 들어가 뭉친 근육을 풀고 샤워하고 나서 습관대로 휴대전화를 보았다
열지 않은 카톡 알림이 보였다. 서슴없이 검지로 꾹 눌러보았다. 카톡방이 열렸고 그 순간 나는 어떤 글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잘 알면서도 몰랐다. 그가 메시지도 아니고 전화를 두 번이나 했다. 검지는 떨고 있었다. 내 명령도 듣지 않으려는지 오그라들었다. 그는 이미 몇 개월 전에 사망한 분이다. 공포영화를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던 무서움이 몰려왔다
순간이지만 뇌활동이 멈추면 겹겹이 쌓인 기억과 판단력도 사라지고 뇌 속이 텅 비는 걸까. 뿌연 안개 속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해 헤매는 것 같았다. 삼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입국하던 날 나의 목적지는 워싱턴 디시의 덜러스 공항이었는데 여행사의 실수로 텍사스 달라스 공항에 내렸을 때의 멘붕 상태와 딱 맞아떨어졌다. 주위 사람들의 말이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신조어로 들리는 환청과 발은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볼 수 있었던 이야기들, 장례식 도중에 죽은 사람이 관에서 나왔다든지 사후 세계를 다녀왔다든지 아니면 공상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허구라고 코웃음 쳤던 일들이 사실일 수 있겠다는 혼돈으로 두려웠다. 운전하면서 집에 와서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생각뿐이었다.
전화를 걸어볼까? 그가 전화를 받는다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터져서 그가 살고 내가 죽겠지. 한마디도 못하고 두 번의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 되겠지. 정신을 꼭 잡아 놓고 어떻게 환생했는지 물어 볼까.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더냐고. 그곳도 살 만 하냐고.
죽은 자가 환생을 해서 전화를 할 수 있다면 풀 수 없었던 그 분의 마지막 말씀을 듣고 싶다. 가깝게 살았던 동생이 위급한 상태를 알려왔고 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목소리를 잃고 표정도 굳어져 허공만 바라보고 계셨다. 어느 순간에 나를 알아보고 무슨 말을 반복하는데 소리가 없는 입 모양을 쫓아 이해하려 했지만, 엄마는 체념의 한 숨을 쉬며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일을 처음으로 겪다보니 두려움과 떨림, 굳어버린 검지의 망설임으로 한 몸이 조각난 것 같았다. 의도적으로 깊은 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검지에 다시 부탁을 했다. '미안하지만 힘들겠지만 눌러줄 수 있겠니?'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조금씩 마디가 펴지는 검지에게 ‘눌러’ 라고, 소리쳤다. 신호음은 길게 이어지는데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와 만남이 새롭게 처음으로 돌아갔다. 감성적인 글과 말로 다가왔다. 시를 잘 썼고 열정을 갖고 꾸준히 작품을 글방에 올렸다. 암으로 힘들어했지만 문자와 전화로 문학 친분을 쌓았다.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더라면 만남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병 치료를 하러 의사인 딸이 사는 타주로 훌쩍 떠났다.
통화를 하면서 서로 같은 성씨로 조상이야기도 나눴고 타주로 가신 그곳에 내 딸도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으니까 꼭 만나자고 했다. 미꾸라지 같은 문학회 회원을 생각하며 내가 쓴 미꾸라지 시와 그가 쓴 미꾸라지 시가 나와서 우리는 대화 속에 서로 추어탕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살고 있는 곳에 추어탕 맛집이 있다고 먹으러 가자고 약속도 했다.
약속도 그의 죽음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가 쓴 시로 가끔 만나고 있었다. 검지가 묻는다. 어떡하라고 어떡하냐고. 지키지 못한 그 약속이 마음에 걸려 전화했을까.
"많이도 잡았구나! 반기시던 어머니
둘러앉아 즐겼던 그날 저녁 추어탕
어머니 계신 그곳에도 미꾸라지 있나요?"
<고 이종길 시인의 :미꾸라지에서 중략>
그의 시를 읽으며 눈물 한 바가지 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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