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중순에 서울 서이초등학교 새내기 선생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소문으로 듣던 일들이 사실이고 현실임에 놀랍다. 제자에게 존경받고 학부모가 감사드리는 선생님은 선망하는 직업으로 알고 있었다. 평생 일하고 은퇴 후에도 안정된 연금이 보장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으면 안 되는 위험한 직업이 되었을까. 요즘은 법에 손발이 묶여 문제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없는 데다가 학부모들의 갑질을 넘어 협박성 민원으로 정신과를 찾고 있다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일까 상상이 된다.
마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지난날의 선생님은 학생들을 체벌하고 감히 대들 수 없는 힘센 존재였다. 운동장과 교실에서 무차별 폭력을 가했던 선생님도 있었다. 아무 저항도 못 하고 맞고만 있던 친구들이 가여웠다. 그리고 단체로 벌을 세우던 일도 잦았다. 최후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무서운 경고도 받았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랐다.
반세기도 안 되어 학생과 교사의 입장이 바뀌었다. 학교라는 교육 현장이 곪아 터진 모양이다. 선생님의 위치가 이렇게 낮아진 것은 우리 인간이 타락한 것인지 학교라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지 그저 먹먹할 뿐이다. 요즘도 생활기록부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곳에 선생님은 소신껏 학생에 대해 기록할 수 있을까?
내가 새내기 선생님 신분으로 일하게 된 것은 LPGA 골프 지도자 교육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골프를 시작했던 그 시대에는 한국에서는 학교도 없었고 소수의 사람만이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운 일본에서 학교에 다녔고 미국에서 골프 선생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골프를 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는 이웃집 아줌마 대접부터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인정해 주는 사람까지 다양하듯이 골프하기 싫어하는 자녀를 데려와 무리하게 내 앞에 세우기도 하고 자신의 신분이 나보다 높다고 생각하는지 초보자가 골프를 배우면서 자꾸 직업을 이야기한다. 정신과 의사가 부인의 손을 잡고 오시는데 마치 가족에게 끌려온 환자 같은 아이러니한 일도 있었다.
또한 언어의 벽은 골프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해서 이해를 시킬지가 문제였다. 한 사람도 상대하기 어려운데 때로는 단체로 모아놓고 하는 래슨도 있어서 부담이 컸지만 나름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도 했다. 동료 레슨 프로들은 자유로운 시간에 나는 책과 프린트물을 들고 다녀야 했다.
어느 날 아들이 연세 지극한 아버님을 모시고 골프를 배울 수 있냐고 찾아오셨다. 작은 키에 둥근 뱃살이 허리를 받치고 있었고 몸도 불편하다는 아드님의 조언에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분이 한참 지나서 오셨다 “선생님, 저 골프 해요. 아주 재밌어요.” 새카맣게 그은 얼굴을 보니 골프에 흠뻑 빠진 것 같다. 그분은 기쁨을 한 아름 담고 오셨다.
골프는 남들과 어울려 하는 운동이지만 홀로 게임이다. 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남에게 매너를 보여야 하고 나를 속이면 안 된다. 스코어는 자신이 매기기 때문이다. 벌칙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골프를 잘 치는 실력 쌓기와 함께 매너와 에티켓을 가르쳐야 하는데 성인들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자녀에게 데모 클럽이 있는데도 항상 상품으로 진열된 물품을 몰래 빼서 쓰다가 팔지도 못하게 만드는 양심 불량의 부모도 보았다. 그런가 하면 자녀가 쓰던 골프채를 제자리에 갖다 놓도록 지도하는 부모를 볼 때는 흐뭇했다.
골프 레슨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중년의 부부와 고등학생의 아들이 와서 레슨을 받았다. 그들은 일본인이었다. 가족 모두가 깍듯이 선생님이라 부르며 나를 대우해 주었다. 한국인이라고 차별 대우를 하고 무시하던 그들의 선생님이 되고 보니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었다. 받은 만큼 돌려줄까? 순수한 마음으로 가르칠까? 기쁘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거듭되는 레슨시간 동안 나의 마음속 앙금은 가라앉고 점점 골프 실력이 좋아지는 그들을 응원하며 같이 좋아하고 즐거워했던 일이다.
새내기 선생님이 삶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도록 몰아세운 학부모와 제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선생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자신에게 돌려놓고 보면 어떨까. 되돌려 까서 정당방위라 자위하지 말고 되짚어 보며 성찰하는 모습이 절절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 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 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요즘도 스승의 날에 이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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