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매스터스 골프 토너먼트에서 타이거를 본 것은 8번 홀 티 박스에서였다. 전에는 항상 다른 선수보다 앞서 걸었고 걸음도 빨랐는데 오늘은 가장 늦게 도착했고 티샷도 마지막에 했다. 7번 홀에서 보기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살펴보니 힘겨워 보인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보았던 활기찬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무표정한 굳은 얼굴로 말 한마디 없이 드라이버 샷을 날렸다. 비거리도 다른 선수보다 짧았다. 일 년 전 차 사고로 다리 수술을 하고 철심을 박았다. 절룩거리며 뒤쫒아 걸어가는 모습에 가여움마저 든다.
타이거 우즈가 일찍 프로골퍼로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얻고 많은 팬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골프장을 활보하던 시절, 정말 호랑이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야성을 내지르던 그 패기는 어디로 간 걸까. 그의 경기라면 떼구름처럼 몰려다니던 관중들도 많이 줄었다
영웅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을까. 그러고도 우승 한 번 못 해보고 사라지는 골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어려운 시련을 견디고 이겨낸 영웅이 이렇게 쉽게 부서지는 이유는 무얼까 .
타이거 우즈는 어린아이들과 흑인들에게 골프 붐을 일으켰다. 타이거 우즈가 나오기 전에는 괴물 같은 존 델리는 있었어도 골프하는 꿈나무들과 아프리카 어메리칸은 매우 보기가 드물었다. 지금도 매스터스 토너먼트에 가보면 백인이 대부분이다.
스포츠계에서도 언제나 화제의 인물이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 초라해보일까. 인간은 쉽게 부서지고 오만해지는 습성이 있는걸까. 매스컴을 통해서 우즈의 스캔들은 유명세와 비례해서 늘어만 갔다. 전처가 우즈의 바람둥이 짓거리에 참을 수 없어 골프채로 반격하더니 결국 이혼으로 끝을 보았다. 그 후에도 간간이 이야기가 들리더니 어떤 이유인지 모를 차 사고로 그것도 셀프 사고라니 의문이 많다.
서서히 추락하는 골프 황제의 뒷모습을 쫓고 있는데 그가 떠난 자리에 다음 선수들이 티업하려고 왔다. 내가 좋아했던 아담 스콧이 캐디와 함께 나타났다. 모자를 슬쩍 벗은 백발의 캐디를 보니 바람에 흩날리는 삭막한 흰 모래사장 같았다. 그는 우즈의 캐디였었다. 그도 앞에서 절뚝거리며 경기하는 우즈를 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스트레스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과 앞서 떠난 우즈의 뒷모습이 너무도 닮아서 가슴이 시렸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남편에게 어제의 일들을 전했더니 매스컴에서는 우즈의 수술한 몸이 완쾌된 것처럼 전달했단다. 현장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본 것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다. 그 후에 커다란 나무가 강풍에 쓸어져서 경기가 중단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수십 년 된 거목도 강한 바람으로 순식간에 드러눕는데 하물며 나약한 인간이 한때의 명예 앞에 무너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까. 마지막 날은 우즈 스스로가 기권을 선언하고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비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걷던 그의 모습을 80대 노인이 걷는 것 같았다는 기사도 나왔다. 그의 뒷모습에 힘내라고 응원해야 할까 아니면 그게 인생이라고 침묵해야 할까.
마지막 날 서둘러 골프장을 빠저나오는데 팔십이 넘어 보이는 분이 불편한 걸음으로 들어오신다. 경찰견이 가까이 오자 말씀하신다. “나는 이곳에 64년째 오고 있다. 염려 말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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