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史
석촌 이영희
이른 아침이면 수문을 활짝 열고 싱싱한 활어 떼 같은
이들을 넓은 강으로 토해내느라 얼굴이 창백한 골목
한가한 아침나절 쉬고 싶어도 잡상인들의 고달픈 소리가
생선 가시처럼 목에 걸려 헛기침을 해대는데
학교가 파하자 눈 부신 햇살 같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삼삼오오 막힌 목구멍을 뚫고 총총 사라지면, 식욕이 왕성해
개들도 자전거도 바람도 소문도 싸움소리 웃음소리,
닥치는 대로 깨끗이 먹어 치운다
어스름한 저녁이면 먹고 먹히는 밥그릇 싸움에 지친
패자와 승자 모두 희생제물처럼 뚜벅뚜벅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입을 딱 벌리고 편식 없이 잡숴주는 골목의 먹성은 참으로
위대(胃大)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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