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문정희
아픈 몸을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는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닥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핵심정리
자유시, 서정시
주제 : 어머니의 희생적 삶에 대한 깨달음
▶특징 :
일상적 생활 속에서 꾸밈없는 시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를 쓰고 있음.
감각적 시어의 대비를 통해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드러냄.
일상적 삶의 모습 속에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의 가치를 드러냄.
▲시어의 대비적 이미지
따스한 밥, 찬밥 :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 신과 같은 존재인 어머니 ↔ 따끈한 밥 :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결여됨
세상의 찬밥 : 현재 시적 화자의 처지
*이해와 감상
찬밥의 이미지를 통해 어머니의 희생적 삶에 대한 깨달음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찬밥을 먹는 경험은 화자로 하여금 어머니의 희생적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가족을 위해 당신은 정작 찬밥을 먹으면서도 신에 비견될 만한 따스한 사랑을 베푸는 존재가 이 세상의 어머니인 것이다. 화자 스스로 찬밥을 먹으면서,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을 온전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추가>
찬밥은 어머니의 사랑을 일깨워 주는 소재이면서, 화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일부러 찬밥을 먹으면서 몸에 따스한 사랑을 품던, 신(神)을 대신하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자신의 처지가 곧 한 가정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어머니라는 시어를 한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사람, 그녀로 대신 한다. 그것은 이 시에서 그리고 있는 대상이 화자의 어머니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시를 읽는모든 이의 어머니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화자가 세상의 찬밥이되었다는 의미는 세상에서 어머니에 대한 평가가 찬밥과 같지만 그 안에는 희생과 사랑이 가득하다는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이다.
▲찬밥의 반복적 사용
이 시에서는 제목을 합해 10회에 걸쳐 찬밥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찬밥이 주는 차가운감각적 이미지는 시를 읽어 갈수록 차갑다는 일반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따스한 밥의이미지와 하나가 된다. 차갑다는 감각적 이미지가 오히려 시 속에서 따스하다는 이미지로바뀌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감각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시어의의미를 이해한다면 작가가 시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의 찬밥에 내재된 의미
우리는 우리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평소에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항상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그것이 사라진 후에야 참된 가치를 알게 된다.
지금 화자는 세상의 찬밥이 되어 있다. 어쩌면 시인은 세상이 바라보는 한 집안의 여자에 대한 가치를 세상의 찬밥이라고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찬밥에는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찬밥의 가치가 내재되어있다.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시 찬밥 이해하기
가장 외롭다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 혼자 아플 때, 혼자 밥 먹을 때, 그것도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 먹을 때…… 그럴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다. 이마에 닿는 엄마의 거친손, 엄마가 끓여 주는 밥, 엄마의 걱정 소리…….
몸이 아픈 시인은, 가족에게 따스한 밥을 지어 먹이고 이 빠진 그릇에 찬밥을 먹던 엄마 생각에 일부러 찬밥을 먹는다. 몸에서 제일 따스한 사랑을 품던, 신(神)을 대신하던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찬밥을 먹는다. 이 시는 소리 내서 읽어야 제맛이 난다. 제목을 합해 모두 10회에 걸쳐 반복되는 찬밥의 차디찬 발음이 자꾸만 목에 걸린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고는 인생의 진리를 말할 수 없다고 했던 이가 괴테였을 것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어 보지 않고는 신(神)을 대신하는 어머니를 말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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