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연선 – 강화식
인공지능 시대에 창작이란?
사람들은 숨기고 싶은 추억이나 사연 하나쯤 갖고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글여울 문을 열고 들어와서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며 열매들을 거둬들인다.
이것이 글여울 문학이며 많은 사람들이 글 속에 파묻혀 함께 웃고 울며 공감해 주는 곳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 속에 머무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시인이 되고 수필가와 소설가가 된다.
글여울을 맡아 강의한 지 9년 차가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각종 신인문학상을 타면서
작가의 뜰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18명이 되었다. 창작을 실적으로만 비유하면 안 되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결과는 결국 실적으로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ㅤ글쓰기는 창작의 고통 속에 희열을 갖는 조각들이다. 생명이 없는 딱딱한 사물에 살아 있음을 새롭게 넣어주고
때로는 아파서 묶어놓고 감춘 마음에 건강함을 펼쳐주는 것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글을 흉내내는 것이 절대 아니다.
모두가 이민와서 터를 닦아온 설움과 눈물, 희로애락을 진실하게게 써 놓은 공간이자 흔적이다..
앞으로는 데이터에 의해 AI가 정확한 단어들을 효율적으로 쓰는 글들이 점점 많아 질 것이다. 검색의 시대에서 대화의 시대로 열리며
창작이 기술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시대에 책을 낸다는 것은 공허한 노동일 수도 있다.
2030년에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능과 같아지거나 더 좋아진다고 추측한다. 역사 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문명이 발달하는 이유를
도전과 응전(Challenge & Response)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했다. 즉 문명이 발달하려면 사람들이 극복해야 할 어느 정도의 과제(도전)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응전)이 있어야 사회는 발전하고 이것이 곧 문명의 얼굴이라고 했다.
과연 AI가 창작을 대신할 수 있을까? 시스템에 의한 자동화가 증강을 초월했다고 한다. 그러면 뇌를 개발해야 하는 어린 아이나
젊은 사람들의 사고를 다 뺏기는 시대가 올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창작을 하는 우리의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아무리 AI가 발전을 해도 다양한 지식을 갖고 질문을 하려면 책을 읽고 풍부한 지식을 쌓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AI의 고전 책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아이로봇’을 읽어봐도 유쾌한 답은 찾을 수 없다.
번개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인공 지능의 시대와 싸워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가져다 주는 공포가 앞으로 분명히 온다.
물론 삶의 가치를 높여 주고 프로세스의 민주화라고 하지만 기가 막힌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것이 창의력이기에
꿈을 꾸고 그 꿈을 색칠할 수 있는 것은 기계가 아니고 호흡을 하는 살아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미래의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지금을 적당히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과연 AI는 우리에게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단연코 창작은 고유 영역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구나 시를 쓰는 일은 더욱더 그렇다. 시는 시가 말한다.
시인은 혼신을 다해 한 편의 시에 자기의 모든 세계를 다 담으려 한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살아있는 창작은 이미지화를 할 수 있지만 AI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눈에 보인다. AI가 쓴 글에 가지 치고 덧입히는 글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창작을 하는 나는 안타깝고 슬프다.
그동안 인간은 도구를 이용해 진화해 왔다. 먹지도 자지도 병에 걸리지도 않는 로봇(아틀라스)이 생산성 혁명이라는
효율성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 인공지능이 공포로 곁에 다가와도 다양한 글을 많이 써야 한다.
또 전문서적과 소설, 시 등 책을 많이 읽는 나만의 자본 형성을 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상식을 높여 놓아야 로봇에게도
수준있는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AI와 사람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고 창작의 공간을 갖고 공생하는 시대로 나아가길 기도하며 맺으려 한다.
글여울 문학 5호를 완성하기 위해 함께 해준 많은 사람들께 감사한다.
한 권의 책을 마무리 짓기 위해 애틀랜타 연합장로교회 손정훈 담임목사님(행복대학 총장)을 비롯해서
애틀랜타 연합장로교회 부설 행복대학 학장님과 부학장님, 임원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후원이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듯
강창석 장로(행복대학 이사장)님께 따뜻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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