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반란(1)
이영희
전원생활을 할 때 꿀벌을 키우게 된 계기는 단지 꿀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생태계와 친환경 농사엔
벌이란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 존재처럼 여겼다.
고작 몇 통으로 전문 양봉가는 아니지만, 벌이 인간의 생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하며
생태계의 파괴로 벌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상은 '인간의 종말'을 예고하는 심각한 수준이라는데 공감했다
극단적인 환경단체에서 '양봉가는 꿀벌 등쳐 먹고 산다' 이런 비도덕성을 고발하지만, 달콤한 꿀의 유혹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는 벌의 일침에 아찔한 경고의 메시지로 알아들었다.
한 연구 발표에 의하면, 벌꿀 1kg을 얻으려면 5천여 마리의 벌들이 4만 번 이상 출역(出役)해야 하며,
5백 만 송이 이상의 꽃을 찾아야 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노동이다. 일벌 한 마리가 45일의 짧은 일생동안
1/12 티스푼( 0.35mg) 소량의 꿀을 채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생각하면 꿀을 채취하는 것은,
노동의 착취요 날강도 짓이라 생각이 들어 이태 동안 채밀(採蜜)하지 않았다.
이듬해 봄날 달콤한 벌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처음 약속과는 달리 반대급부인양 꿀을 너무 많이 착취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일이 있었다. 벌들은 담합(談合)한 듯 몸서리치는 배신감을 안고 떠난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악덕 업주를 상대로 파업한 것처럼 떠나버린 고요한 빈 벌통 안에는 무단 침입자의 탐욕과
착취의 흔적을 지우고 화창한 봄날 꽃향기와 밀월의 정표인 노란 꽃가루, 오월의 진줏빛 이슬 한 방울로
빚어 품질 보증 표시로 봉인된 밀랍 속엔 약간의 꿀을 정표로 남긴체 예고된 이별처럼 쓸쓸히 떠나고 말았다.
공자의 밥상 (2)
논어에 공자가 먹지 않은 음식 아홉 가지가 있는데 그 불가식( 不可食)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음식이 본래 지닌 색깔이나 맛을 잃으면 먹지 않았다.시장서 사 온 음식을 먹지 않았다.
제철 음식(時食)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공자가 살아있다면 먹을 음식을 구하기가 힘들 것 같다, 지지고 볶고 온갖 화학 조미료와 색소를 첨가한
인스턴트 식품이나, 학비료와 농약 유전자 조작된 것들 그리고 온실 재배를 통해 계절과 상관없이 생산되는
음식물들이 그의 불가식의 이유가 될 것이다
까다로운 식성이라기보다는 당시 드문 나이 78세 장수가 그의 불가식의 원칙을 입증한 것으로 믿는다.
'미각의 파괴는 단순히 건강뿐만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며 인간의 정서를 파괴한다' 고 그는 믿은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식도락이나 건강적인 차원을 넘어 철학적이고 친환경적인 사고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2천 5백 년 전 공자의 불가식론이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불변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공자가 기피했던 음식물이 공자의 나라 중국에서 생산 제조되어 전 세계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저가격 중국산 불량식품에 ‘중궈줜(中國饌) 신드롬’으로 건강을 위협을 받는 이들에게,
지금 공자께서 생존해 계신다면 위로의 한 말씀 하실 것만 같다
진티엔 니하오마(今天你好嗎)/ 당신은 오늘도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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