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고원>
꿈을 완성 시켜준 (고)고원 교수님 탄생 100주년에 연선 – 강화식
글로벌 비전 성인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처음 가는 날이다.
상기된 마음으로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심호흡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란 하늘, 흰 구름을 보면서 잠시 생각의 틀에서 비켜서 보기로 했다. 하늘이 만약 초록색으로 보였다면 구름은 노란색이 되었을까? 상상을 하며 교실에 들어갔다.
70대 중반이었던 고원 교수님의 모습은 연세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그리고 단정하고 고상한 시인의 모습이다. 학생들의 소개와 더불어 교수님의 학사 일정과 강의 내용을 들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각자 상상력을 동원해서 백지에 글을 써보라고 주문했다. 열심히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난감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7분이 지나고서야 하늘이 초록색이면….을 써내려 갔다.
매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강의 시간이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끝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12시가 되어야 끝났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몇몇 학생들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문학 얘기를 나누었다. 일주일에 3시간 이상씩 열심히 배웠고 한 달에 2번 글마루에 가서 글쓰기 공부를 또 했다. 그 때가 가장 공부를 많이 한 황금시기였다.
상상력을 갖고 쓴 내 글을 처음 본 교수님이 ”꿈을 꿉니까?” 물었다. “네 자주 꿉니다”
“아 ! 그러면 그 꿈을 써 갖고 오세요” 그렇게 주문을 받았지만 한 학기가 지나도록 쓰지 못했다. 조각조각 영상이 바뀌는 것들을 연결해서 쓰는 일이 수필 쓰기보다 힘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면 매번 똑같은 말을 했다. “꿈 좀 써봐요” 새 학기가 되면서 너무 부담이 되어 등록을 하지 않으려고도 했었다.
가을 학기가 지나고 나서야 꿈을 쓰기 시작했다. 의외로 교수님은 물론 학생들도 꿈
얘기를 좋아하며 기다렸다. 동력을 얻은 나는 지병(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인지 거의 매일 꾸는 꿈을 써서 수업 시간에 갖고 갔다. 하루는 교수님이 LA의 한인을 위한 글쓰기 그룹인 글마루에서도 소개를 하면 좋겠다고 해서 “요세미티 호수 (꿈 34)”를 발표했다. 작품을 읽고 나니 변호사인 고재남 학생이 여기가 어디예요. 가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꿈 30편을 넘게 쓰면서 글에 탄력이 붙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특정 상황에서의 결과가 얼마나 그럴 듯 한지를 염두에 둔 개연성을 갖고 끝을 맺어서일까?
하루는 교수님이 꿈을 보고 오래도록 말이 없어서 긴장을 잔뜩 한 날이었다.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이 숨죽여 눈치만 보고 기다리는데 드디어 멘트가 시작됐다. 도사가 다 되었네요. 그리고 참 묘한 사람이네요. 만약 프로이드가 살아있었으면 이 꿈은 100만 불에도 샀을 거예요” 하면서 꿈을 모아서 책을 내라고 했다. 묘한 꿈 얘기들 때문에
필명도 연선(아름다울 연, 신선 선)으로 지어줬다. 사람 이름에는 신선 선을 쓰지 않지만 이 학생한테는 써야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매년 등단한 학생들에게는 호성, 미단, 누리등 필명을 지어 줬다.
집에 돌아오니 교수님한테 이메일이 왔다. 디즈니랜드에 가서 에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나 타진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극찬을 해줬다. 그러면서 꿈을 여기저기다 공개하거나 내지 말고 빨리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기쁜 마음에 더 열심히 꿈을 쓰고 다듬으며 창작에 꽃을 피울 전성기를 맞았지만 교수님은 끝내 기다려주지 않았다.
2008년 고원 교수님은 노을 빛 너머로 자리를 옮겼다.
Van Nuys 창작교실에서 처음 만난 고원 교수님.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만났고 모두
6년 동안의 배움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18년이 흘렀지만 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교수님한테 배운 학문으로 지금 애틀랜타 연합장로교회 부설 연합 칼리지 문예창작반(글여울)을 맡아서 8년 째 학생들에게 나누고 있으며 보람도 느낀다. 매 학기마다 3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여러 곳을 통해 17명이나 작가의 뜰 안으로 들어왔다. 또 애틀랜타 순수 문학회를 이끌며 다른 나라와 다른 지역 사람들과 한 달에 1번 글로벌 강의를 하고 있다. 모두 교수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에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교수님 덕분에 나는 시인이 되었다.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신춘문예)의 시 부문에 당선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되었고 “텔로미어” 단편시집도 냈다. 연이어 해외 풀꽃 문학상도 받았다. 이제 남은 일은 꿈으로 산문집을 내는 일이다. 그리고 교수님을 다시 만날 그날까지 가르쳐준 에너지로 선배님들과의 활발한 문학교류 및 후배들에게 열심히 나누는 일이다. 또 계속해서 재능과 감성, 상상의 주파수를 넓이고 높여서 빛을 비추는 제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고원 교수님 탄생 100주년에 간절히 소망한다.
문학인들이 나를 고원 교수의 골수제자, 애제자로 부르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 제자인 내가 교수님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위대한 문을 아직도 통과하지 못해서 죄송하다. 그 날을 위해 더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며 살아야겠다. 교수님이 떠나기 전 잘 보관하라고 일일이 사인을 해서 나에게 물려준 책들을 다시 한 번 읽고 모아서 기록으로 남겼다. 또 고원 시비가 있는 한국의 충북 영동에 다녀왔다. 그동안 내가 만든 책들을 고원 시비에 올려 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2가지를 기록하고 만든 디카시를 고원 교수님 탄생 100주년 기념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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