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고국 방문 단상
석촌
한국 방문 길에 내가 할 일 리스트 중 제대로 된 이발과 한국식 목욕은 필수 코스였다
아내가 처삼촌 묘 벌초한 듯 들쑥날쑥 깎은 머리카락을 고르느라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애쓰는 이발사와, 우동가락 처럼 밀리는 때를 보고 세신사(洗身士)가
‘미국에서 오셨어요?’ 라고 묻기 전에 미국 촌사람 잘 부탁합니다 이실직고하고
이방인 티를 벗어나지 못한 나는 서비스를 받는 동안 처분만을 기다리듯 몸을 맡겼다
목욕제계( 沐浴齊戒)한 센님처럼 낯선 얼굴과 가벼워진 몸으로 길거리를 걸으며
식당이나 마트를 가도 현지인으로 보는 이는 없는 것 같았다. 생뚱맞은 나의 행동이나
세련되지 못한 스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향으로 가는 길목마다 생소하고 낯선이들이 많아 타향처럼 변해있었다
네살 때 사고로 죽은 누이동생의 반짝이던 별 무덤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해 관절염을 앓다가 쓰러진 고향 옛집터는 내 유년의 추억이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긴 겨울 달밤엔 잠못이루는 가난한 부모형제들 위해 부엉이는 언발로 서서
부흥부흥(復興復興) 울었고, 배고픈 긴긴 봄날에는 잘사는 나라 복받는 나라 위해
뻐꾹새는 富國福國 울어주던 마음 알싸한 곳,
수 십 여년 전 미국으로 이민 떠날 때 가난한 시절 친구들이 찾아와 내 팔을 붙잡고
‘예수믿더니 니는 천국으로 가서 좋것다’ 천국에서 돌아 온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래, 재미없는 천국에 사는 내가 재미있다는 지옥, 한국에 사는 너희들이 부럽구나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는데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거라
재미있다는 한국을 뒤로하고 재미없는 천국으로 돌아오는 길지 않은 여수(旅愁)에
이방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정말이지, 내 집 같은 곳은 없으리(there is no place like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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