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여동생이 딸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어떻게 일정을 잡아야 그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가보고 싶었던 멕시코 칸쿤으로 여행을 떠났다.
처음 가는 여행지라서 긴장과 기대가 엇갈리며 세 여인이 한마음이 되어 중복되는 물품은 줄여서 가뿐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가 타고 갈 항공사에서 보내준 정보와는 달리 갈 때는 국내선에서 출발했고 돌아올 때는 국제선이었다
세 시간 비행하고 나니 애틀랜타와 전혀 다른 분위기가 우리를 들뜨게 했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카리브해가 눈앞에서 빨리 몸 담그러 나오라고 손짓하는 듯하여 수영복부터 챙겨 나갔다. 그런데 여동생이 조심스럽게 달거리 걱정을 했다. 몇 달 동안 없었는데 물놀이를 시작하는 첫날부터 보이기 시작한다며 탐폰을 써야겠다고 했다. 심술도 날 잡아서 부리기에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여행 일정을 하루 남기고 한국인 가이드가 안내하는 일일투어를 갔다.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저녁 시간에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세 곳의 명소를 미리 유튜브로 보았음에도 이색적이고 신비로워서 심장이 쫀득쫀득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온통 핑크빛의 염전이라든가 천연 동굴 속에서 수영과 다이빙을 하고 피라미드 앞에서 손뼉을 치면 새소리가 나는 신기한 장소까지 온종일 행복 바이러스가 쏟아졌다.
숙소로 돌아와 화장실에 들어간 여동생이 시간을 끌더니 나를 부른다. 하루 종일 보지 못했던 당혹감과 지친 얼굴에 빨리 해결을 해보려고 구글 검색으로 알아낸 방법을 써 보았지만, 시간만 어두운 밤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응급상태를 알리고 간호사나 의사가 있으면 빨리 우리 방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기다렸더니 여의사가 와서 가방을 열어 수술용 집기들을 펴 놓기 시작하더니 조심스럽게 작업을 시작했다. 눈물을 쏟는 동생을 진정시키고 마치 출산이 곧 시작되는 순간처럼 간호사가 된 우리는 탐폰을 빼내려고 그 곳에만 집중했다. 한참 애를 먹이다가 기어 나온 그것을 보니 우리도 힘들었지만, 저도 밖으로 못 나와서 답답했는지 형체가 처참했다.
에피소드를 만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우리는 쇼핑하러 갔는데 자동차 키가 없어졌다. 차 문을 잠그며 바로 앞에서 경찰에 붙잡힌 다른 차에 정신이 팔려 어디에 넣었는지 기억이 사라졌다. 옷에 달린 주머니를 반복해서 뒤집어보고 가방 속을 샅샅이 찾아봐도 열쇠 꾸러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어 집에 가서 여분의 키를 가져오자고 휴대전화로 우버를 부르려고 하면서 한 번 더 점검을 해보니 가방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다.
거듭되는 해프닝을 보다 치친 젊은 조카 딸이 독백처럼 웅얼거리는 말에 귀가 열렸다. ‘쫄깃한 날’? 처음 들어보는 표현에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심장이 졸아드는 황당한 경우에 쓰는 말이라고 한다. 쫄깃하고 쫀득한 맛있는 한국 음식에 난처하고 곤욕스러운 상태를 대비시킨 센스가 흥미롭다.
몇십 년 전 시조 시인이 쓴 글은 해석 없이는 이해가 안 되듯이 말과 뜻의 표현도 세월의 흐름에 변화되어 요즘 젊은 세대와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약자와 부호, 모음 없는 글자와 이모지 그리고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다른 나라의 언어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다. SNS에서 찾아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예를 들면 고기를 먹으로 가는 날에 “내가 이 소고기를 혼내줘야겠어.”라든가 술을 마시러 가면서 “내가 간을 아야 하게 해 줄게.” 라고 했다. 웃음을 자아내는 이런 표현은 귀엽고 예쁘다.
조카딸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 이벤트로 쫄깃한 심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월마트로 데려가서 조카딸이 원하는 물건을 사주고 나서 과일도 싱싱하고 가격도 좋은 다른 가게에서 큰 수박과 망고 두 박스를 사 들고 집으로 왔다. 작전대로 트렁크를 먼저 열고 사 온 물건을 뒤적거리며 조카딸이 가져갈 물건이 없어졌다고 연기를 했더니 허리를 구십 도로 구부리고 정신없이 뒤져보는 두 모녀의 엉덩이를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내가 들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또 쫄깃한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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