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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흰 고무신

이난순2022.01.14 19:35조회 수 4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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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흰 고무신

 

언니 한테서 전화가 온다

집에 맛있는거 해놨으니 먹으러 오랜다

병원 근무가 없는날 집엘 갔다.  점심을 차려주어 잘 먹고나니 언니가 이실직고를.

실은 나를 소개해 주고싶은 사람이 있어서 집에 오라고 하였다고.

커피숍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다 한다.

난 화를 내면서 "언니 나 아직 시집갈 마음도 없고,누구랑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제발 그러지마"

하고 집을 나설 차비를 한다.

언니는 사정 사정하면서 제발 이번 한번만 자기 소원을 좀 들어달라고 애원한다

나는 뿌리치고밖으로 나와 내구두(하이힐)를  찾았으나 언니가 감춰버려서 찾을수가 없다

아버지 흰고무신만 덩그러니 있고 뜰엔 다른 신발들은 하나도 없다.

난 화가나서 핸드백을 어깨에 멘채,뜰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흰고무신을 끌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설마하니 구두를 갖고 뛰어 오겠지 하며 정류장에 도착했으나 언니는 오지 않았다.

아마 언니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엄마랑 언니는 나를 시집보내지 못해서 안달이다.

 

내가탈 버스가 도착하여 난 어쩔까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버스에 오르니, 버스안에

있던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위 아래 훑어보며 내발에 걸쳐진 커다란 고무신에 시선들이 멈추며 웃음을 흘린다.

멀쩡하게 생긴 아가씨가 맵시있는 원피스 차림에 ,핸드백까지 잘 메고서 커다란 남자고무신이라니....!

하고들 의아해 하면서.  할수없다, 한남동에서 광화문까지 수모를 당할수밖에.

나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듯 태연스러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광화문에서 내려 서대문까지 걸어가는게 더 문제였다. 큰 신발을 끌고 가야하니.

하지만 어쩔수가 없질 않는가. 빠른 걸음은 틀렸고,천천히 걷고있는데 뒤에서 킬킬거리며 웃는 소리들린다

뒤돌아보니 남학생들 여럿이 따라오며  뒤돌아보는 내게 무안했던지 조용해진다.

그러나 나 자신도 우스워서 씨익 웃으니 그들도 그제서야 소리내어 따라 웃는다

이젠 창피할것도 뭣도없이 자연스러이 길을 걷고있다

 

병원에 도착하니 저녁때여서 어차피 배도 고프고,식사시간이 되어 직원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도 닥터들과 동료 간호사들 모두 나를 쳐다보며 웃고들있다. 어찌 된거냐며.

난 태연스레 신발을 잃어버려 흰고무신 빌려신고 왔다고 할수밖에.

 

식사를 마치고 기숙사에 올라가 방문밖에 벗어놓은 신발에 또 한바탕 소동이났다.

사감님이 깜짝놀라 쫒아오시며 금남의 집에 웬 남자 고무신이냐고 호들갑을 떠신다

다른방의 친구들도 우르르 몰려오고.

 

참으로 웃기는 해프닝이었다.

어머니는 제발 시집좀 가라고 애원하시며 내가 시집만 가면 반찬 같은건 엄마가 다 해다 줄테니

아무 걱정말고 빨리 결혼하라고 나중엔 협박조로 얘기하신다

난 실제로 음식을 만드는게 참 두려웠다. 푸르런 배추가 어떻게 맛있는 김치로 변신하고, 뻘건 

쇠고기는 어떻게 맛있는 불고기로 되는지.

 

나의 두려움은 실제로 신혼초에 남편이 퇴근후 친구들을 대동하고 함께 왔을때 폭발 하고 말았다.

고기를 한보따리 사 가지고 와서요리를 해 달라는데 어찌할줄 몰라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잠시후에 남편이 걱정이 되었는지 부엌으로 나와보고 놀라서 ,나를 달래주느라 애쓰며

자기가 요리 할테니 걱정말라 안심시킨다

간신히 친구들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난 그냥 자유로이 처녀시절이 마냥 좋았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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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노래 할아버지의 눈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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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 2014년 콜로라도 덴버로 이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제6회 애틀랜타신인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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