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이 한 지붕
딸은 버지니아 주에서 출생한 미국 여권소지자이다. 아마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미국시민으로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몇 년간은 무척 고생이 많았다. 엄마와 아빠 말이 다르고 도서관이나 TV에서 듣는 말은 또 달랐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옆에서 지켜보는 내 마음은 초조했다. 선생님이 말하는 뜻을 이해나 할 수 있을지 말이다. 그래서 가끔 자원봉사를 와 달라면 기쁘게 달려가곤 했었다. 딸이 잘 적응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유치원은 미국 아이라도 뭐든 배워야 하는 때라서 알파벳을 외우며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유치원 다니며 모아두었던 자신이 쓰고 그렸던 스크랩북을 보며 딸은 배꼽을 잡는다.
“엄마, 내가 이 단어를 이렇게 엉터리로 썼잖아.”
‘그래, 너 참 고생 많이 했다. 초등학교 때도 다른 애들보다 두 배로 노력했어야 했으니까. 엄마는 강제로 한글공부를 시켰고 아빠는 일어를 또 시켰으니까.’
가끔, 자신은 필요없는 한국어와 일어를 미국에서 꼭 배워야 하느냐고 투정을 할 때 그냥 미안하기만 했었다. 미국말 배워보았지만, 많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일본인이다. 일본국적에 일본 여권 소지자이다. 일본에서 겪은 차별대우에 이를 갈며 일본놈들과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그만 남편이 되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이다. 나는 누구 못지 않게 일본, 일본사람들을 미워했었다. 그래서 받은 만큼 언젠가는 꼭 복수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남편은 겁 없이 자신에게 하라며 나를 받아주었다.
큰어머니도 일본 사람이다. 한국 남자만 믿고 일본 식구들에게 절연 당하면서도 한국을 선택한 사람이다.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지만 가족과 연락조차 못하고 있다. 반드시 한쪽만 억울한 것도 아닌 게 세상의 이치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 연속극이 보고 싶어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어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외로움을 잊기 위해 그리고 삶의 낙을 찾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던 큰엄마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은 어느새 일본인에 대한 저주가 용서로 이해로 녹아내리고 만다.
사람들은 나에게 질문을 한다. 결혼을 했어도 남편 가문에 합류하지 않고 한국이름에 한국국적에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창시개명까지 해야 했던 과거사의 설움 때문만도 아니다. 굳이 합칠 이유가 없다. 삼국이 한 가정이 되어 잘 살고 있는데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단일국가로 통합해야만 할까. 내가 일본 성을 갖고 있다 해서 누가 나를 일본인으로 볼 것이며 남편이 미국국적을 가졌다 한들 누가 일본인을 미국인으로 볼 것인가.
집 안에서 삼국 정상회담도 한다. 정치와 사회문제 그리고 자연환경 등, 하지만 다툼도 없고 의견도 대체로 일치한다. 열전을 벌였던 월드컵 축구 응원전도 각자의 언어로 따로 보니 열 받을 일도 없다. 정식 결혼증명서도 있겠다, 중요한 건 삼국이 화합해서 한 지붕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아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평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자국인끼리 좌파 우파하며 양파처럼 나뉘고 쪼개져서 싸우고 무시하고 비웃고 억지부리는 가슴아픈 현실을 보면서 차라리 타국인과 이해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삶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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