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4일 낮 3시 15분, 둘루스에 있는 버라이즌 가게에 들렀다. 멈춰버린 핸드폰에서 사진 재생이 가능한지 문의하기 위해서다.나보다 먼저 와 있던 한국인 부부와 두 딸 아이가 있었다. 부인은 한국인 점원과 영어로 대화 중이었고 어린 딸은 뛰듯이 걸으며 산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은 늦장가인 듯, 딸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이거나 유치원생으로 보인다. 볼일을 마치고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데, 어린 딸이 뛰어나와 내 앞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가버린다. 서둘러 따라온 아빠는 딸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저--- (잠시 말이 끊기더니) 할머니 앞을 가로막고 나오면 어떻게?”
할머니!!! 난생처음 들어본 호칭에 멍해지더니 남아돌던 기운이 쑥 빠져버린다. 내가 어찌해서 할머니인지 설명해 보라고 따져볼까 하다가 감정을 누르고 차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아줌마라고 듣던 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할머니라니 대낮에 날벼락인가. 오늘 아침부터 묘한 꿈을 분석하며 나쁜 사고라도 생길지 모르니 특히 운전 조심을 하자고 다짐하고 외출을 했는데 물리적 차 사고는 수습하면 되지만 오늘 받은 정신적 대형 사고는 언제쯤 치유가 될까, 아니 될 가능성이 있는지….
나는 항상 평범한 삶은 의미 없으으로 인식해 왔다. 그래서 일찍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따분하게 느껴졌고 같은 나이에 손주를 봤다고 좋아하면 한심하게 생각했었다. 단지 남들이 다 해주는 축하를 나만 측은하게 생각할 수 없어 마음에도 없는 거짓 축하를 보내야 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딸이 전공 공부를 마치려면 사 년 정도는 더 시간이 걸리니까 적어도 육십은 넘어야 할머니 소리를 듣겠거니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오늘 타인으로부터 날벼락을 맞고 보니 내 시야와 사고의 편협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 차가 많은 남편은 딸의 중학교 교정에서 너의 할아버지 오셨다는 말을 들었다고 어색해 할 때, 재미있다고 깔깔거렸던 그 철부지 순간이 오늘은 너무 부끄럽고 한심하고 위로 못 해줘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는 여성의 마지막 호칭이기에 슬프다. 염색을 미루다가 흰머리를 보여서였는지, 아니면 몇 년 전에 어금니를 빼고 나서 치열에 균형이 깨지면서 음식 섭취를 줄였더니 얼굴 살이 빠지면서 광대뼈가 나오고 없던 눈 밑 지방 살까지 생겨서 그렇게 보였는지. 남들에게 무심하게 수없이 던졌던 할머니라는 일상어가 왜 자신에게는 충격이고 실망이고 자괴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나도 살 만큼 산 것일까. 노년 계획은 아직도 먼 먼 이야기로 들리는 데 . 늙어서 아름답다는 자위는 인정할 수 없다. 할머니는 인생길에서 끝이 보이는 돌아갈 수 없는 길목이기에. 입구를 나오려는데 안면 있는 진짜 할머니 부부가 들어오신다.
난 아니야, 할머니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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