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돌려
이경화
A 여사는 사는 재미를 깨끗함에 두고 평생을 쓸고 닦고 털어 내면서 그것만이 오로지 자신 삶의 과제인양 끝까지 고수하고 있다. 잘나가던 시절은 젊은 가정부를 딸이라 부르게 하며 잘 부려 먹었지만, 장래를 기약하고 떠난 그 자리를 메꿀 길이 없어 이 사람 저 사람 아는 사람이라면 반강제로 집으로 끌어들여 쓸고 닦기를 시켰다. A 여사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중에서 단 한번이라도착출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주위가 더러우면 얼마나 더럽다고 싫어하는 남까지 동원해서 자신의 깨끗함을 고수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미국처럼 바깥 외출하고 그대로 신발도 벗지 않고 침대까지 기어들어가는 생활 환경도 아니건만 A 여사의 유난스러움은 칠순이 지나고 팔순인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물론 자신의 손으로 일해서 주위를 깨끗하게 한다면 과히 경이해 마지않겠지만 꼭 남을 부려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는 심사가 괘씸하다. 며느리는 물론이고 조카 사촌 팔촌에게 보이는 인간이라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누구라도 걸려들어 거절할 길이 없다. 때로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때로는 과거 가정부를 두고 살았다는 신세타령으로 둘러대는 재간은 과히 프로급이다. 타고나길 입놀림이 수려해서 언제나 말로 남을 사로잡아 반강제로 도우미로 부리고 만다.
A 여사의 덫에 걸린 젊은 봉사대원 순진 씨는 그 날의 악몽을 이렇게 재현해 들려준다.
“ 먼저 그릇을 닦으라고 하더군요. 세제를 잔뜩 발라 식기 하나씩 힘을 주어 정성껏 닦으라는 주의를 받았죠. 시키는 대로 열심히 닦아 놓았죠. 힘을 들여 닦았더니 팔이 다 아팠어요. 다 마치고 쉬려 하니 다시 한 번 더 닦으라고 명령을 하더군요. 한 번 닦아선 기름때가 안 진다나요. 정말이지 기절할 뻔했어요. 그냥 문을 박차고 나오려다 한 번만 더 해주자고 인내로 끝마쳤죠. A 여사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계속 입만 놀렸어요.”
이렇게 남을 부려 깨끗한 집안을 만들었다고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딱한 A 여사는 딱히 취미도 없다. 마음이나 고우면 동정이라도 하련만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말 제조기처럼 끝없는 가짜 이야기가 줄줄이 새어나온다.
아들도 A 여사의 괴팍한 성품을 아는지라 비가 오는 굿은 날은 아예 신발을 벗어 품에 안고 귀가한다. 팔순이 되도록 이러한 지독한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계속되니 주위에 아는 사람들은 모두 A 여사 곁을 떠나버렸다. 이젠 남은 사람이라고는 가장 가까운 남편밖에 없다. 남편도 팔순을 넘긴 기력 떨어지는 할아버지가 되어 자신의 몸을 수습하기도 어려운데 어느 날부터 A 여사의 압력에 못 이겨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세탁기는 성량 좋은 최신식 제품을 베란다에 모셔 두고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남편을 들볶기 시작했다. 아무리 세탁기가 때를 제대로 빼내지 못한다기로서니 팔순 넘은 기력 없는 사람 손만 못하겠는가. 한 번 돌려 만족 못 하면 한 번 더 돌리면 될 것을 고집불통에 남을 부려 행복을 누리는 별난 품성으로 남편을 생으로 잡고 있다.
남들은 흙을 자연의 대지 속이라 생각하지만 A 여사의 앞날은 더럽다고 생각하는 흙으로 들어가는 일 밖에 남은 것이 없는데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변함없이 힘없는 남편에게 손빨래하라고 고집을 부리며 살고 있다.
‘세탁기 돌려, 아니면 자수기 돌리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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