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이경화
‘굿모닝 에스오에스’
이른 아침부터 J의 혀는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J가 취직한 회사이름은 SOS가 아닌 SAS이다. 직장 초년생 J는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받기에 정신이 없다. 전화 걸은 손님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하니?”
이미 잘못 뱉어버린 말을 수습할 길이 없었다.
‘그래요. 도와주세요. 헬프 미’
오피스 안의 회사동료가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미국에서 영어 쓰기도 어려워 죽겠는데 새로 들어간 회사는 일본회사라서 3개국어를 구사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거기다 걸려오는 전화의 고객들은 J처럼 이민 온 타국인들이 많아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돈이 아쉬워 시작한 일이 고달프다. 회사에서는 J를 트레닝 기간이라며 이것저것 다 시킨다. 첫째 관문은 전화 응답하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듯이 영어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Th 발음이 스가 되기도 하고 드가 되기도 하고 일본인은 자가 되기도 한다. J는 귀청의 안테나를 최대한 길게 뽑고 걸려오는 전화를 향해 전장에 나가는 투사의 자세로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고객을 향해 방어자세를 취한다. 일단 영어로 걸려오면 재빨리 한국어로 생각하다 다시 일본어로 돌려 사무실 직원에게 전달해야 한다. 완전히 동시 통역하는 일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J가 받는 월급은 쥐꼬리만 하다.
인터뷰하던 날 J는 대담하게 왜 그렇게 보수가 적냐고 겁 없이 물었다.매니저의 대답은 무경험이 이유란다. 그래도 그렇지 남들 못하는 3개국어를 하는데 이거 너무 빡빡하다 생각하며 시작할까 말까를 망설이다 한번 해 보죠로 결론을 내렸다.
전화받는 일이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제대로 듣기도 어려운데 인정사정없는 손님들은 자기 편한 데로 지껄이다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다시 물으면 그것도 못 알아듣느냐고 짜증을 내며 무안을 주는 인간도 있다. 그러나 J가 포기하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친절하고 따뜻한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못 알아듣는 J를 위해 천천히 또박또박 되풀이해주면 J는 고마워 꾸벅 절을 하다가 책상에 부딪쳐서 이마 깨지는 소리를 내면 동료들은 즐거워 죽는다.
눈치 빠른 J는 그들의 바램을 알기에 가끔은 과장해서 대답하기도 하고 이마박이 깨지는 소리가 더 경쾌하게 들리도록 책상을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는다. 때로는 온몸으로 대답하다 엉덩방아를 찢기도 한다.
매니저가 일을 시키면 달려가 서류를 받아들고 일 처리를 시작한다. J의 장점은 스피드다. 몸을 써서 처리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빠르다. 동료는 걸어가 처리할 일을 J는 날라가 버린다. 몸과 함께 서류가 날아다닌다. J는 신나서 날리면 받는 동료는 불안에 떤다. 대부분이 장기 사무직원들이라 몸 쓰는 일은 답답할 정도로 둔하고 엉덩이가 무겁다. 이미 날려버린 서류를 어기적거리다 겨우 받던가 떨어뜨리고 쩔쩔맨다.
“J, 날리지 말고 보내요.” 부탁 아닌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J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내가 날리고 내가 받아드릴께요.”
매니저에게 날려버리고 서류를 되잡아 넘기려다 그만 회전의자에서 나자빠지고 말았다.
동료는 일제히 일어나 손뻑을 치며 즐거워한다.
“J, 괜찮습니까? ”
“예, 괜찮지 않아요. 다음부터는 미리 보고하고 나자빠지겠습니다. 손 좀 잡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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