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창을 따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하버드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라는 대 명제를 놓고 열강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정의란 이런 것이다라는 단순 논리가 아니었다. 교수가 어떤 사건을 제시하면서 학생들과 자유로운 토론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다각적인 입장과 생각을 주고 받으며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찾고 있었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하버드 대학 특강을 컴퓨터 클릭 버튼만 누르면 언제든 시청이 가능하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일이다. 하버드대에 합격하기 위해 책들과 씨름을 하며 날밤을 새웠을 지난 날의 어린 청춘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몰래 도강하는 얌체 인간이 된 기분도 없지 않다. 몇 날 며칠을 푹 빠져 듣고 또 들었다. 이렇게 우월한 유전자들의 집합체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과 환상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에게 불려가 등록금 재촉을 귀 딱지가 달라붙도록 들어야 했었다. 나와 친했던 진수도 대학을 다니며 학비를 내지 못해 죄인처럼 강의실에서 쫓겨 나갔다가 숨어들어와 도강을 밥 먹듯 했었다. 시대를 잘 타고 난 요즘 아이들은 이런 기막힌 사연을 알기나 하는지. 주거환경도 열악해 지금처럼 가족 전원이 각자 자기 방을 쓸 수도 없었다. 항상 언니, 동생들과 함께 나눔의 공간이 되다보니 나 홀로 공부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공부하고 싶은 열망으로 아침 일찍부터 마을 도서관에 가 보면 어느새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서 입장하려는 학생들로 아예 포기해야 했고 좀 더 발품을 팔아 널찍한 남산 도서관으로 버스를 타고 달려가 봐도 역시 줄줄이 입장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북새통이었다.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정원초과에서 걸리기 직전에 운 좋게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다 지치고 아침 일찍 나오느라 허기진 배의 꼬르륵 소리가 들리고 참으로 힘든 공부였다. 공부하기 위해서 소비해야 했던 불필요한 시간이 더 많았다. 미국에는 시설 좋은 도서관이 동네마다 있고 입장하기 위해 줄 서기는커녕 정원초과에 가슴 졸일 이유도 없고 충분한 공간과 컴퓨터의 무료 사용과 책대여 시스템의 선진화되어서 너무 좋았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미국인들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까 겁도 났다.
그런데 얼마 전, 지인이 알려 준 한국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고 나서 자식의 교육에 올 인하고 사는 부부들의 생활이 이질감을 더해 역겨움마저 느꼈다. 상류층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일류 대학의 유망학과에 입학시키기 위해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전문인을 고용했다. 그리고 오로지 시험 점수에만 목을 매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사는 웃지 못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입시에도 코디가 있다니, 미국에서 이 십년을 넘게 살았지만 처음 듣는 일이다. 이런 부모들이 자식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에 입학시키려 한다면 무슨 짓을 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늘 아래 제일 높은 곳,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스카이 캐슬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살고 싶다면 우주를 떠나서 달나라 첫 이주민이 되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드라마라고 하지만 한국의 학부모들에게 듣고 보고 온 현실과 흡사한 내용에 억지로 쓴 약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국의 대학 입시는 어떤가? 학교 공부만 착실히 해도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는 선진화된 미국의 교육제도에 감사함을 느꼈다.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어 학비 걱정을 하지 않고도 평등한 배움의 기회를 주는 제도는 또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지.
따뜻한 방 안에서 맛있는 건강식품을 옆에 놓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학비 걱정도, 등하교의 불편함도 없이 하버드 특강을 듣는 날은 하고 싶은 공부 못해 한 맺힌 영혼들을 불러 파티라도 열고 싶다. 진수에게 전화를 걸어 도강을 끈기와 오기로 버티며 학문을 빌어먹으며 살았지만 지금은 교수가 되어 강의실의 주인공이 된 노고를 칭찬해 주고 왜 세상에 빨리 나와 생고생했느냐고 다독거려 주고 싶다.
하버드 강의를 듣게 해준 모든 분들과 테크놀로지를 개발한 분들 그리고 지식도 공유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지식을 퍼 담을 수도 있고 퍼 낼수도 있는 지금이 정말 살맛이 나는 세상인 것같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