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바 사랑
이경화
아주 어렸을 적에 활짝 대문을 열어제치고 불쑥 들어와 험상궂은 얼굴로 동냥을 와서는 대접을 해 주지 않으면 벌컥 화를 내며 겁을 주고 돌아서 나가던 괴물같던 거지가 지금은 스타가 되어 대중을 울리고 웃긴다. 보기만 해도 두렵고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화상이 요즘들어 가슴에 와 닿는 따뜻함과 정겨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웬일일까.
“어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저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옛날 같으면 저 인간 죽지도 않고 왜 또 와서 지랄이야 할 텐데 스타가 되어 나온 각설이는 어서 오시지요 오늘도 많이 웃게 해 주세요 라며 애교라도 부리고 싶다. 유튜브를 통해서 품바 스타들은 거의 다 만나 보았다. 어떤 각설이는 막걸리 한잔하고 세상 시름 다 벗어버리자고 털털하게 넘어가는가 하면 어떤 각설이는 구구절절 애간장을 태우며 한 맺힌 세상을 어찌 살아가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하고 운 좋은 각설이는 거지 자격에 부인을 얻어 세상 사는 맛을 표현하기도 한다.
역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각설이의 입담이다. 흔히 말할 수 없는 쌍소리를 부담 없이 마구 대중 앞에 내뱉는데 듣는 사람들은 욕설과 면박을 주어도 폭소만 터트린다.특히 각설이 부인이 각설이에게 던지는 쌍소리는 지금까지 남존여비 사상으로 항상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던 어머니 세대를 생각하니 아주 시원하고 신선하다. 이젠 한국도 미국처럼 남녀평등시대인 것 같아 새삼스럽기도 하다.그러나 남녀평등까지는 좋지만 미국 같은 여존남비의 거꾸로 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다음으로 재미있는 부분은 비록 걸인 행세를 하며 살면서도 부정한 자들을 향해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한과 울분을 표출해 내는 묘미에 있다. 대중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효자 손 노릇을 당당히 해내고 있다. 과거 각설이의 삶은 빈 깡통 하나 차고 다니며 문전에서 구걸하던 시절과는 달리 요즘 각설이가 벌이고 있는 품바 사업은 자본금도 보증인도 필요 없고 망할 일도 없다지만 그렇게 녹녹지 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들고 다니는 장비를 보니 장구, 북, 쾡가리, 어떤 각설이는 현대식 악기인 색소폰까지 불어대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다 많은 소품들과 엿을 파는 진짜 사업을 즉석에서 하고 있으니 말만 거지이지 수완 좋은 사업가다. 입담 좋고 노래 실력 풍부하고 춤사위도 특출나고 각설이야말로 으뜸가는 탤런트이다.
“품바란 가진 게 없는 허(虛), 텅 빈 상태인 공(空), 그것도 득도의 상태에서의 겸허함을 의미한다고 전하며 구걸할 때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예, 왔습니다. 한 푼 보태주시오. 타령 들어갑니다." 등의 쑥스러운 말 대신 썼다고들 한다. 또, 품바란 한자의 '품(稟)'자에서 연유되어 '주다', '받다'의 의미도 있다. 또 달리 '품'이란 품(일하는 데 드는 수고나 힘), 품앗이, 품삯 등에서 연유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전해 내려오면서 명칭의 변화는 있었지만 거기에 함축된 의미가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라는 말로 변해왔으며, 이 노래(타령)만은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났을 때 반드시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렸던 것이 다른 노래에서 볼 수 없는 일이다.” <소설 품바시대 上>,김시라,
각설이의 품바타령이 끌리는 이유는 위에서 열거한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 라는 사랑의 나눔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도 각설이의 품바타령을 영원히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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