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잡는 날
이경화
고양이 앞에 쥐라면 당연지사, 그러나 쥐 앞에 고양이 입장이라면 어떨까. 고양이 주인 아빠는 일 관계로 타주로 출타 중이고 주인 딸은 입시를 앞둔 고교생이라 고양이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쥐인 내가 고양이를 관리하고 다스려야 하는 딱한 입장이 되었다. 완전 위계질서 무너지는 날이다.
첫날부터 고양이는 쥐를 무시하고 든다. 그래도 주인들의 명령이니까 나름 정성을 들여 보살폈다. 그런 쥐의 수고도 아랑곳없이 날이 갈수록 고양이의 행세가 괘씸해진다. 주어진 적당량의 식사를 매일 갖다 바치는데도 배가 터지도록 더 먹으려 하고 무한정 줘도 거부를 하지 않고 계속 먹고는 다 토해낸다. 밥 주고 화장실 청소하고 고양이 시트 갈아 대기도 바쁜데 이제는 토해내는 횟수가 늘어 세탁기 돌리기가 바쁘다. 정말이지 고양이 앞에서 주름 잡는 쥐 팔자는 하 팔자다. 고양이가 쥐 앞에 얼씬거리지 않는 처지가 상팔자다.
날이 갈수록 걸식증 증세가 더해지더니 자꾸 고양이 배 쪽만 불러온다. 혹시 임신한 게 아냐 쥐머리로 계산을 해보지만 사고치고 들어온 날은 이미 먼 옛날 일이라 타당성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처럼 상상임신인 걸까. 타 주에 있는 고양이 주인에게 전화로 상황보고를 했더니 뭔가 심상치 않으니 가축병원으로 데려가 진찰을 해 보란다. 명령대로 주인 딸을 동행시켜 진찰을 받으러 가는데 고양이도 쥐 앞에서 맥을 뭇 추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쥐 가슴팍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살려달라고 애원이다. 눈치 빠른 고양이가 벌써 심상치 않은 사태를 파악하고 우습게 여기던 쥐에게 사정한다.
가축병원에 도착해서 접수인한테 걸식증으로 문제가 생겨 진찰받으러 왔다고 했더니 자신도 음식조절을 못하는 문제가 있단다. 그러고 보니 상당한 비만이다. 그런데 가축의사도 비만이라서 고양이의 먹고 싶어 환장하는 병증세를 설명하기가 조금 무색했다. 진찰을 마치고서도 의사는 고양이의 병 증세를 파악조차 못하더니 다시 날을 잡아 엑스레이를 찍어야만 알 수 있단다. 자신의 몸도 조절 못한 가축 의사를 보면서 선택을 잘못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일이니 밀고 나가기로 했다. 사진 찍힌 결과를 보고도 확답이 나오지 않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의사의 의견대로 수술을 시켰다. 수술을 하고 나서야 의사는 자궁감염이고 자궁 안이 귤 하나 정도 크기로 부어 있다고 한다. 세상에 만연된 여성들의 자궁문제가 고양이에게까지 퍼지리라고는 쥐머리를 잡아 뜯어도 이해가 안 간다. 내 정성을 다해 싫다 싫어를 좋다 좋아로 맘 고쳐먹고 돌보았건만 자궁감염이라니 쥐머리에 경련이 일어 오늘은 쥐 잡는 날인가 하고 달력을 점검해본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고양이가 퇴원을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라 몇 년 만에 두 발 뻗고 잠을 잘 것 같은데 잠들어 봐야 알 것 같다. 꿈속라도 나타나 쥐를 괴롭히면 그땐 핼러윈 데이 마냥 고양이 탈을 쓰고 누워버려야겠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