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러
이경화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왜 불러.’
한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노래가사 말이다.
이름이 남과 같아서 시도때도없이 불려서 갖은 수모 다 겪은 경험은 끔찍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같은 반에 남자아이와 이름이 같아서 친구들이 경화야 부르면 그 녀석과 나는 동시에 얼굴을 돌리며 누가 날 불렀지? 정말 나를 부른 거야 라며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중학교때 같은 반 여자애랑 또 이름이 같아서 왜 불러, 날 불렀느냐고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에 나가는 행운을 안아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지만 이름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여권을 만들기 위해 신원조회를 하는 과정에서 나와 똑같은 이름이 있었는지 아직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나는 전과자가 되어 빨간불이 켜지며 순조로운 진행을 막았다. 담당 선생님께서 혹시 범죄사실이 있었냐고 물어올 땐 당장에 이름을 바꿔버리고 싶었다. 한국에선 엄연히 한글과 한자를 동시 표기하게 되어 있어 그런 오류를 발생시킨다는 것은 그 일을 처리하는 담당자의 나태라고 생각했지만, 행여 한자까지 같은 사람이었다면 나를 부를 수도 있었겠다.
그렇게 왜 불러가 번복되었는데 정말 내 마음을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저녁에 집으로 귀가했더니 할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하시는 말씀,
“경화야. 너 무슨 나쁜 일 하고 다니니? 왠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너를 찾더라.”
사회인으로 살면서 잘못한 게 뭐가 있었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정체의 사나이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나서 무례하게 우리 집 안방으로 들어와 단둘이서 면담을 하잔다. 한참 잊은 고교 시절을 생각해 보란다. 무슨 뚱딴지같고 복창 터지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때 지은 죄라면 남들 대학 가려 공부할 때 잠시 옆길로 빠져 공부 대신 열심히 한강에서 배를 젓은 죄밖엔 없는데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던 을숙인가 을자인가를 찾기 위해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지하철 노조 선동자에 포함된 그녀가 하필이면 졸업앨범에서 나와 가까운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로 나도 지명 대상에 끼었던 것이다. 한국을 미련없이 떠나자고 그 때 결심했다.
미국에 와서는 아예 이름을 잘라 버렸다. 그렇다고 정체성 없이 완전히 영어로 이름을 맞바꾸고 싶진 않았다. 내 얼굴이 수잔이나 줄리아가 된다고 달라지랴 싶었다. 이름 석 자를 두 자로 줄였다. 미국인들이 경을 이상하게 발음하지만, 과거의 불만 썩인 왜 불러는 일단 사라졌다 싶어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계속 걸려오는 나를 찾는 전화로 또 왜 불러가 시작됐다. 같은 이름의 누군가가 크레딧 카드 빗을 갚지 않고 달아났다며 계속 그 인간이 내가 아니냐고 추궁하는 전화를 매번 거절하기란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고선 참아내기 어려웠다.
‘왜 불러 ,왜 불러, 착하게 사고 안 치고 살아가는 사람을 왜 불러.’
그런데 오늘은 꼭 나를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짧은 목을늘리면서 혹시 나 아냐 나를 불렀나 하며 귀속의 안테나까지 뽑아내며 행운의 당첨자가 나이기를 바랐다.
‘왜 안 불러, 왜 안 불러, 애가 타도록 기다리는 사람을 왜 안 불러. 왜 안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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