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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를 불러들이는 일

이난순2024.11.07 11:39조회 수 588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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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팔 걷어붙인 그날은

바람도 귀때기에서 시려웠다

 

 

무청 잡은 손에

매끈한 몸체 선뜻 보여주니

가을 아직인가 보다

흰 몸에 황토 묻은 무

 

 

손톱으로 겉껍질 배 돌게 벗겨낼 수 있을까

연한 살 한 입 베어 물면

거기

유년의 무 서리가 튀어 나오겠지

 

 

뒤꼍에 항아리 두어 개 준비해 두고

무를 씻는다

무청 달린 채 굵은 소금 옷 입혀

차곡차곡 항아리 담으며

노랗게 익어갈 시간 읽는다

 

 

쪽파 고추 청각 생강 마늘

그리고 사과 배도

동치미 국물에 배어들기 바라며

 

 

연탄가스에 답답했던 가슴

방문 박차고 튀어나왔던 밤

주인집 아주머니의 동치미 사발에

살아났던 자취생

 

 

살얼음에 우러날 손 맛

항아리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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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씨앗-B T S 문닫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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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무'는 색깔과 독특한 맛이 없어 무(無)인가,

    별미 중 으뜸은 한겨울 따뜻한 아랫목에서 風霜 한사발에 

    겨울 한자락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동치미

    한겨울 입맛를 다스리니, 동치미( 冬治味)라 했겠다

     

    토속적인 시로 시각 미각 감각까지 다 불러낸

    이 선생님은 村婦임에 틀림없다, 싫거나 말거나 ㅎㅎ

     

  • 석촌님께
    이난순글쓴이
    2024.11.14 08:12 댓글추천 0비추천 0

    입동 때만 되면 동치미 담글 생각에

    즐거운 바쁨이 시작되죠

    친정 어머니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여

    입동에 동치미를 담아야 제 맛이 든다 하셨던.

    옛날 아이들 어렸을 때 동치미가 떨어지면

    " 엄마 또 동치미 퍼 돌리셨군요" 라는 힐책도 듣곤 했어요 ㅋ ㅋ

  • 시 속에 담긴 동치미를 맛보며 할머니를 떠올리고 빨개진 손으로

    얼음 속에서 꺼내 주셨던 옛 맛이 살아나 군침이 도네요.

    자연식을 하던 그 시절이 아득하네요.


-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 2014년 콜로라도 덴버로 이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제6회 애틀랜타신인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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