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해 보셨나요?
이경화
너무 더러워진 마음의 오물들을 씻어내기 위해 세탁 전문인의 의뢰를 받으러 세탁소를 찾았다.
“제 마음을 세탁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세탁 전문업의 주인답게 내 질문에 시원스럽게 대답을 해 주었다. “널린 게 교회잖아요. 가 보세요. 다들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마음의 세탁을 하고 온다고 하던데.”
세탁 전문인의 조언대로 교회에 찾아갔다. 모두 나름대로 말쑥하게 빼입고 나왔다. 엄숙한 분위기가 일상생활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런데 마음 세탁을 하러 온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깨끗해 보여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세탁이 끝났나요? 아니면 시작인가요?” 처음 보는 옆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그런데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교회 참 문제 많아요. 목사는 당연히 모든 걸 신자들로부터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신자들에 대해 고마움도 모르고 신자들은 무조건 목사에게 갖다가 만 바치면 천국행 승차권을 받는 줄 알고 물불 안 가리고 목사에게 잘 보이려고 난리에요. 정말 열 받아요.” 교회를 찾아온 것이 마음 세탁하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불연듯 우편물이 생각났다. 모 비영리 단체에서 내 이름과 주소가 예쁘게 인쇄된 스티커를 만들어 보냈다. 일방적으로 보내주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주 적은 금액의 기부금을 보냈다. 남에게 작은 나눔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바램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의 아픔을 같이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금전적으로 돕고 산다면 마음의 세탁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몇 주일 후부터 날라오기 시작하는 비영리 단체들의 기부금 통지는 끝이 없었다. 내 정보를 입수한 단체들이 군인을 돕자. 동물들을 보호하자.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자. 아프리카의 굶주린 사람을 보살피자는 편지였다. 이 정도라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물난리와 흡사했다. 홍수였다. 그 많은 단체에 매월 매번 기부금을 내기엔 너무 벅차다.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자신의 경험을 털어 놓는다. 친구의 남편이 정치기부금인 티파티에 천 불을 기부했다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전화번호를 바꿔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요즘 인간들은 아예 양심을 어디다 빼놓고 사는 것 같다. 한 곳에 기부할 만한 사람이라면 어디라도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종교도 자선 행위도 전혀 마음세탁에 도움이 되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고 고양이를 붙잡고 실컷 이야기하다가 아무 반응이 없는 고양이에게 ‘그렇지’ 하고 혼자 중얼거린다.
이렇게 마음의 세탁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던 어느 날에 꿈을 꾸었다.
“너 손빨래해 봤어?”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는 세탁물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힘들여 빨아서 해결했다는 것을 잊었다. 요즘에는 집에서는 반드시 세탁기가 있어야 세탁이 되는 줄 알고 집에서 할 수 없는 세탁물은 세탁소에 가야만 세탁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떤 세탁물이든 자신이 한다면 남에게 의지할 필요도 없고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남에게 실망할 필요도 없고 남을 비방할 필요도 없으니 자연히 마음의 세탁도 필요 없게 되지 않을까? 필요해도 아주 적은 세탁량이 되지 않을까? 왜 자기 스스로 마음의 세탁을 할 수 없다고 해보지도 않고 헤매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