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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웃음

이경화2024.10.04 17:46조회 수 416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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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탑승 시간을 생각하니 지루해서 일찍 호텔에서 나와 공항으로 갔다. 포루투갈 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빨리 수속을 마치고 싶었다

 

     

     줄로 섰지만, 앞에서 번째, 직원이 우리를 불렀다. 여권과 탑승권을 보여주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여행 가방을 들어서 올려놓으라고 했다. 가방 개에 90유로. 왕복으로 계산해 보니 편승 사람 티켓값이다. 비싸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어쩌랴  부르는 값이다.  남편의 크레딧 카드를 주었더니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도 같은 항공사로 왔었고 같은 크레딧 카드로 결제를 했는 쓰지도 않는 번호를 달라고 하니 난감했다. 혹시나 하고 크레딧 카드를 넣어도 넘버 없이는 결제가 안되었다. 갖고 있던  현금을 건넸더니 카드만 받는다며 방법이 없으니,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우리는 동시에  라는 듀엣을 불렀다.  이렇게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본지도 오랜만이었다. 립스틱과 터치를  단풍처럼 그린 그녀를 보니 얼굴도 빨갛게 뭉개지고 있었다.  미쳤어!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에 그녀는 시작한 십여 분도 되었는데 일을 접고 자리를 뜨겠다고 옆에 있는 직원에게 직언을 날렸다

 

   

    불쑥 튀어나온 세계 공통어가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나보다. 시간은 지체되고 뒤로 길게 있는 미안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내가 미칠 같았다 지금껏 독일과 포루투갈의 크고 작은 상점에서 아무 없이 썼던 카드가 알려진 항공사에서 결제가 된다니  시퍼렇게  멍든   심장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었다. 넘버가 필요한 은행 데빗 카드도 사용해 적이 없어서  즉석에서 만들어 보고 기억나는 숫자를 조립해도 헛수고였다

 

   

    숫자에 묶여 사는 삶이 스트레스다. 모든 곳에서 비밀번호는 남이 도용하지 못하게  어렵고 길게 쓰라고 했다.  가족의 전화번호도 외우지 못하는 자동화 시대에 숨겨 두어야 번호가 개나 되는지조차 모른다. 피트니스에서 자신의 자물쇠 번호를 몰라 거대한 가위로 잘라서 겨우 옷을 갈아입던 그녀도 생각났고 홧김에 아파트 현관 번호를 바꿔서 밖에서 날밤을 새웠던 이웃도 보았다. 기억하지 못해서 집으로 돌아가 숨겨둔 번호를 찾아서 겨우 처리를  했다는 언니의 하소연도 생각났다. 어느 모임에서 나는 7번으로 통한다.  나이 순으로 정해진 번호다. 이름은 사라지고 숫자가 존재한다

 

   

     여기 시스템이 미쳤어.’ 초긴장 속의   터짐으로 오해는 풀렸나보다. 그녀는 붉게 물든 얼굴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우리는 매니저와 면담을 요구했지만, 매니저도 없었다.

 

   

    이런 와중에  다른 직원이 와서 가지 해법을 알려줬다. 어디가서 온라인으로 결제를 보던가 여기 있는 사람 누군가의 카드와 현금을  교환하라고 했다. 우리는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는데 지체 없이 분이 도와주셨다.   시간을 헤매다 무사히 수속을 마쳤다.  뒤를 돌아서 다시 고맙다고 인사하려 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법처럼 어디서 하고 나타났을까?  자리를 뜨기 전에 갑자기 우리에게  빨간 웃음을 짓던 섬뜩한 여직원의 얼굴이 생각나서  올가을 단풍 구경은 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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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을 쏜 스나이퍼 바람개비 도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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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이경화글쓴이
    2024.10.4 17:57 댓글추천 0비추천 0

    오늘 이 수필을 순문방에 올리려고 낮부터 비밀번호 찾기를 시작했지만 방법이 없어 단톡방에 올려 김수린샘의 도움으로 등록이 되었다. 날로 늘어만 가는 비밀번호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은 나만의 불편함일까????

  • 언어의 연금술사인 이 선생님의 秀作을 읽으며

    이런 에피소드를 경험하는 나같은 이들을 위해

    대중적 문화칼럼으로 공론화 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종의 대리만족이나 지원군을 만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홀로 사는 노모가 자유롭게 아들네 집을 방문 할 수 있도록

    출입문 비밀번호를 세 아들네가 같은 번호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모를 배려한 며느리들의 효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 석촌님께
    이경화글쓴이
    2024.10.4 21:29 댓글추천 0비추천 0

    너무 좋게 평가해 주시니 송구스럽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갈까 하다가 제 수준에 맞게 끝냈습니다

    아들 며느리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면 뭉클한 뭔가가 올라오네요.

    부모님을 배려하는 젊은이들이 있으니 노후가 두럽지 않아요.

  • 유쾌한 여행의 마무리가 난처한 상황이 되어 멋진 글의

    소재가 되었으니.... 참 재미있네요

    실력 발휘를 이렇게도 해내시는 걸 보면서 내면에 쌓인 게

    무진장 인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 이난순님께
    이경화글쓴이
    2024.10.15 20:06 댓글추천 0비추천 0

    글을 억지로 써 보려고 끙끙거려도 안 되는데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뇌가 글을 재촉해요 ㅎㅎㅎㅎ 저도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도 책이 고플 정도로 내면이 텅 비어있어요.

    주어 담아야 할 공부가 많아요. 이난순샘의 꾸준한 작품, 너무 부럽습니다.


- 수필가
- LPGA Life 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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