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는 남자들
이경화
매년 4월 초가 되면 조지아 주에 위치한 Augusta에서 열리는 골프 대회가 있다. 메이저 대회 중의 하나인 Masters Tournament이다.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4월의 푸르름과 딱 맞아떨어진 자연 속의 축제처럼 마냥 즐겁다. 하루쯤 골프 애호가들은 휴식과 동시에 투어 프로들의 기량을 보면서 배움을 터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억 소리나게 많은 상금을 놓고 다투는 PGA 선수들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그 보다도 더 신나는 광경은 따로 있다. 일단 남성들은 줄 서기 준비를 해야 한다. 수적으로 남성들의 입장객이 여성보다 월등히 많아서 그렇고, 퍼마시는 맥주잔의 숫자가 비례하여 더욱 그러하다. 그뿐인가. 매스터즈 마크가 새겨진 온갖 기념품들을 사려면 일렬대기가 끝이 없다. 사기 위해 줄 서고 고르려고 줄 서고 돈 내기 위해 줄 서고 사고 나서 다시 물건 찾기 위해 줄을 선다. 매년 같은 느낌이지만 매스터즈 만큼은 남성패션이 단연 여성보다 앞선다. 매장에 준비된 여성코너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아주 상품도 적은 편이다. ‘남성들이 패션 앞에 줄을 서다’ 이건 기삿감이다. 하기야 요즘 남자들 성형하고 손톱 발톱에 매니큐어 칠하고 귀 뜷고 화장도 하는데 무슨 놀랄 일이냐고 친구가 한마디 거든다.
항상 집을 떠나면 느껴지던 불편함 중의 하나가 화장실 문제다. 남편은 방대한 시간 중에 한 두 번이면 충분한 화장실 출입을 나는 자주 들락거린다. 타고난 구조 차이로 방광과 요도의 시스템이 작용하는 시간적 배려라고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매번 길게 늘어서야 하는 대기 시간에 불만이다. “또 가니?” “누군 자주 가고 싶으냐고.” 이럴 땐 깡통을 차고라도 다니고 싶지만, 여성은 불가능하다. 한쪽 다리만 들면 어디서나 실례를 할 수 있는 개 입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성처럼 지퍼만 열면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골프장에 가면 몰래몰래 깜짝 쇼를 해대는 남성들의 편리함에 참 좋겠다 부러워하며 참았던 일을 해결하러 화장실로 냅다 줄달음치지 않을 수 없다. 매스터즈에서는 여자 화장실의 대기 라인은 길지 않다. 반대로 남성들은 매우 길게 늘어선다. 이 광경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어도 나만 프리패스로 입장할 수 있으니 아쉽다.
그러나 세상살이 이런저런 이유로 예외가 있듯이 이곳에도 줄 서지 않고 같은 일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남자들은존재한다. 그들은 출입구도 다르고 먹고 마시며 관전하는 장소도 다르다. 물론 일반인들에게 통제된 출입제한 구역도 들락거린다. 항상 줄을 서야만 하는 일반인 속에서 벗어나 우선순위 행세를 하며 사는 줄 서기 면제자들의 축제 단면을 보면 씁쓰름한 기분은 왜 드는지…….
“내 것 다 가져”
생판 모르는 남자가 나에게 건네주는 물건은 다름 아닌 자신이 마셨던 맥주 컵이다. 눈짐작만으로도 족히 열개 쯤은 되어 보인다. 그가 자기 집으로 들고 가려고 모아둔 매스터즈 마크가 새겨진 그 컵을 왜 나에게 줄까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그의 다른 한 손은 바지 지퍼를 올리고 있었다.
“눈 감아 줄게. 그냥 가져가.”
그는 몰래 일을 보다 들킨 양심선언으로 내 입을 막기 위해 선물을 주려 했던 것이다. 줄려면 좋은 거나 주지. 치사하게 사용한 플라스틱 컵을 받기는 싫었다. 노상방뇨 벌칙금이 얼마인지 알았더라면 신사적으로 협상을 하겠지만 날 좋고 기분 좋은 날, 줄 서지 못하고 이탈한 남자를 구제한 여자의 아량을 그대는 아시는지.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