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이경화
충청도 출신인 경자는 어렸을 적에 습관적으로 거시기라는 말을 잘 썼다. 서울말이라면 왜 ‘그것’ 정도가 될까. ‘왜 거시기 있잖여유~’ 그리고 길게 늘어지는 유~. 가 항상 붙어 다녔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이사 온 경자는 촌티를 벗어내기 시작했다. 전학 와서 첫날, 담임 선생님은 서울깍쟁이 반 친구들에게 거시기, 경자가 무척 공부를 잘한다고 소개하였다. 시골 촌년이 서울 선생님의 과찬 때문에 더욱 반 아이들의 주목을 받곤 했었다. 외형상으론 절대 똑똑해 보이지도 않았고 차림새도 촌티가 묻어 났고 말씨조차 길게 늘어지는 게 영락없는 거시기였다.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경자의 거시기도 세련되어져 갔다. “거시기 있잖아?” “있잖아’는 알겠어. 그런데 거시기가 뭐니?” 서울깍쟁이들은 깔깔대고 웃어댔다. 그럴때마다 경자는 무안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잠가버렸다. 그럴수록 반 애들은 경자가 재미있어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학창시절은 항상 똑같은 실생활을 일기에 담아야 하는 중노동을 학교에선 강요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되더니 중학생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들,우들도 프라이버시가 있어유~. 지금처럼 풍족한 삶이 없었던 몇 십년 전에는 문화생활도 없어서 일기에 쓸거리도 마땅히 없었다. 그저 일기 내용은 매일 거의 같은 것을 써야 했고 그래서 짜증도 났었다. 그래도 학교에선 숙제로 계속 일기 쓰기를 강요했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오니 반 애들이 떼거리로 선생님의 교단에 머리들을 쳐박고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경자는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어 그 애들을 젖히고 밀고 들어갔다. 예상대로 경자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같이 써야 하는 일기 숙제가 지겨워 일기장에 농담을 써 놓았다. ‘선생님, 돌 굴러가유~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선생님은 돌에 맞아 천당행 완행열차를 타고 말었어유~. 그 후로는 반 아이들의 기쁨조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거시기를 연발해야 했다. 유독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다고 교무실로부터 주의를 받았던 것도 경자의 거시기 덕분이었다.
그렇게 중학교를 거쳐 대학을 나와 어른이 되었다.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 거시기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촌스럽다고 눈썹을 추어올리는 꼴불견이 다 된 자신을 보면서 그 시절, 거시기에 끔뻑 죽어가던 반 아이들이 그리워 경자는 혼자서 중얼거려 본다. ‘거시기 있잖아.’
그런데 놀라운 일을 발견 했다. 미국에도 거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경자 회사에 앨라배마 출신인 촌놈이 있었다. 제이슨은 행동도 말도 영락없는 거시기였다. 왓업 경(What’s up Kyung), 두 박자면 끝날 말을 제이슨은 정말 길고 느리게 경자에게 인사를 건네온다. ‘우아쓰어업 기이이영~’. 그 촌놈을 보면 학창 시절 경자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배꼽을 잡는다. 그렇게 웃어대는 경자를 보고 회사 동료는 이유를 묻는다. 경자는 미국 거시기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똑같은 말을 제이슨이 하면 절대로 웃지 않으면서도 경자가 하면 회사 동료는 손뻑을 치며 웃어댄다. 경자는 어쩔 수 없는 거시기였다. 요즘 회사 동료는 자신들이 무료해지면 떼거리로 찾아와 경자에게 거시기를 주문한다. 경자는 다시 그들의 기쁨조가 되어 멋지게 거시기를 뽑아낸다. ‘우아쓰어업 기이이영~. 손뼉 치며 깔깔거리는 놈, 뒤로 자빠지며 숨 넘어가는 놈, 자기 이마빡을 쳐 대는 놈, 경자는 그놈들을 완전히 죽여 주기 위해 다시 한 번 ‘우아쓰어업 기이이영~. 을 뱉어냈다. 경자 회사 동료는 시체처럼 모두 바닥에 드러 누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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