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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는 기억한다

이난순2024.09.15 07:20조회 수 505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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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뭉쳐지기 좋아할 때가 있다

 

 

깡통 하나 높이 쳐든 친구 팔에 달라붙는다는 건 신나는 일

그들은 투명한 알집 속 까만 도롱뇽알처럼

나란히 줄지어 호기심 캐러 산에 갔다고

 

 

유골로 돌아온 소식

 

 

언덕에 억새들 해를 등지고 서 있다

마을 뒷산으로 오르는 길

칡넝쿨이 경계를 허물고 녹색 어둠도 깊다

 

 

마을 사람들, 등이 휜 채 밭에서 일하다 마주한 비보

 

다람쥐가 심어놓은 도토리가 실마리를 찾아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십일 년 하고도 육 개월

닳아빠진 늑골에 한숨으로 들어선 뿌리가

부모 대신 감싸고 있었다

 

 

아이들 불러댔던 소리

메아리 속에서 쇳소리만 울렸고

마루 끝 걸터앉은 아버지, 부뚜막에 엎딘 어머니

처마 밑 서까래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동네 사람들, 푸른 귀로 그안의 주파수 흩어지지 않게 칼날 세웠지

그 애들의 교실도

문 열어둔 채 잠그지 못하고 낮이나 밤이나 서성였다

 

 

구덩이 파일 때 뿌리들 날카로이 잘린 몸 움츠린 속에

그의 숨소리 기억하였다

 

 

은닉의 완성에 취한 목에 감아 줄 뿌리 키우며

아이들 비명 옹이로 담아 살아왔는데

그는 어디 있을까

 

 

두개골에 남겨진 상흔 위로

바람이 와서 조문 하고

 

 

다섯 아이들 위한 리퀴엠이 천창 스테인드글라스에 닿는다

 

 

 

 

 

 

얼마전 뿌리는 알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퇴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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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도가엔 술이없다 출 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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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영구 미제로 남은 대구의 다섯 초등학생들 살인 암매장

    30년 전 비통한 이 사건은 모든 부모의 가슴을 쓰러내리는데

    그들 부모님들은 죽은 목숨처럼 살았을 것이다

     

    시인의 감성으로 클로즈업한 슬픔을

    두꺼운 눈물의 렌즈로 드려다보며

     

    ' 구덩이 파일 때 뿌리들 날카로이 잘린 몸 움추리며

    그의 숨소리 기억하였다'

     

    어린 영혼을 달래는 진혼에 가슴이 메이네요

     

    .

  • 석촌님께
    이난순글쓴이
    2024.9.16 00:14 댓글추천 0비추천 0

    이 사건에 대해 처음 쓸 때는 눈물 범벅이며 썼는데 요

    써 놓은 글 읽어 보며 실소를 금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냥 사건을 축약만 했을 뿐 시가 아니더라구요!

    다시 퇴고를 해 보았지만 아직도 미흡하여 또 언젠가는 다시 손을 대겠지요. ㅎㅎ


-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 2014년 콜로라도 덴버로 이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제6회 애틀랜타신인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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