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로
이경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빠른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백수는 백수라서, 일하는 사람은 일하느라고, 젊은이들은 배워야 할 일이 많아서, 노인들은 여생을 즐겁게 보내려고 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 우리의 삶은 시간에 쫓겨 달려가는 자동차와 같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원하는 물건을 얻고 원하는 음식을 더 빨리 먹을 수 있기를 고민한다.
한국인의 특성인 ‘빨리빨리’는 전 세계인의 관심사다. 인터넷을 좀 더 빨리 접속하고 싶어 추가 요금을 내고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 비싼 요금을 내고 논 스톱으로 달려간다. 빨리 음식을 먹으려고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가기도 하고 아예 미리 주문해 놓고 달려가기도 한다.
10월 초에 짧은 일정으로 사촌 언니와 스모키 마운틴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직은 단풍이 들기에는 이른 시기지만 타국에서 찾아온 언니를 위해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다. 출발하기 전에 호텔 예약은 물론이고 그 지역에 위치한 가볼 만 한 명소를 잘 아는 지인의 정보를 받아 가는 곳도 정했다.
초행길이라서 편리한 구글 맵을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계획한 일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기분이 좋았는데 목적지인 호텔에 도착하기 몇 분 전에 사고가 생겼다. 지금까지 호흡이 잘 맞았던 맵 안내자와 내 뇌의 시그널에 갑자기 이상이 생기면서 목적지를 벗어나 샛길로 빠지고 말았다. 맵은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지시를 내렸지만 뒤쫒아 오는 차들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풍경만 이어지고 오는 차선 하나와 가는 차선 하나로 속력도 내지 못하는 좁은 길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질 시간도 머지않아 불안한 마음이 들어 마치 미궁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십여 분이 지나자 서서히 가던 차들이 완전히 멈추었고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들도 없었다. 더욱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차 사고라면 지체되는 시간쯤은 짐작이 가능하다. 우회로를 피해서 지름길이라고 달려왔는데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이게 무슨 웃지 못할 일인가. 궁금증은 더해지고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 차 밖으로 나와 앞사람들이 그 앞 사람들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를 들었다. ‘흑곰이 나타났다’ 흥분된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나갔다. 앞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말소리조차 사라지더니 눈앞에 흑곰이 보였다. 저녁거리를 찾아 나온 듯 커다란 엉덩이를 우리 쪽으로 내밀고 열심히 낙엽 속을 뒤지고 있었다. 야생 흑곰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달뜬 표정과 ‘와’라는 감탄사를 쏟아내며 카메라의 셔터를 조심스럽게 누르거나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기도 하면서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빡빡한 일정에 피곤했을 텐데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언니를 보니 우회로의 여행이 얼마나 큰 선물이 되었는지 깨달았다.
류시화는 산문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준다. 그 길이야말로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헤매는 것 같아 보여도 목적지에 도달해서 보면 그 길이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다.”
그렇다. 지름길만이 최선의 최상의 길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회로가 필요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름길만 가느라고 마음은 항상 바빴고 그래서 더욱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고 불평만 했다. 삶에 지름길은 없다. 왜냐하면, 삶의 시작은 출생이고 끝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향해 지름길로 달려가는 운전사는 없을 테니까. 삶의 우회로는 몸으로 부딪치고 실패하면서 노력하며 쌓아가는 인생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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