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다 내놔
이경화
젊은 나이에도 K는 여자이면서도 별로 여자다운 맛이 없었다. 기본 바탕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상이 좋다. 잘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예뻐보이려고 화장을 한다든가 멋있게 보이려고 멋을 낼 줄도 모르는 섬머슴같은 여자였다. 그러나 행동만큼은 발랄, 명랑, 상쾌 그 자체였다. 멋적은 데이트도 안 했고 멋있는 남자를 찾아 보려 헤메지도 않았다.
그런데 멋적은 남자가 나타났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재수없이 이마빡을 마주치고 말았다. 항상 명동거리는 사람들로 북적대서 우연찮게 사람들과 부딪치긴 하지만 이마빡을 마주 받긴 난생처음이다. 사내 이마빡이라 그랬는지 무척 단단해서 K 이마빡은 금방 왕방울만한 혹이 생겼다.
“이것봐요! 앞을 잘 보고 다녀야지. 땅만 보고 다니니 사고가 나죠?”
“이 여자야, 하늘만 보고 걸으니 내 이마빡에 걸리잖아!”
그러면서 사과의 의미로 차 한 잔이 계기가 되어 연애가 시작되었다. K는 평상시 그대로의 수수한 차림에 귀걸이는 커녕 싸구려 손가락지조차 없었고 목걸이도 없었다. 보석에 관심이 많았던 오빠는 이런 K가 신선하게 보였다고 한다. 저 예쁜 얼굴에 보석을 달아준다면 금상첨화겠다 생각하며 마냥 지켜만 보다가 점점 사랑이 무르익어 가면서 슬그머니 보석 하나를 K에게 건네주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저 빤짝빤짝 거리는 보석을 선물로 받고 나서부터 K 마음은 서서히 보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오빠 역시 주도면밀하여 장래의 아내감을 여러모로 관찰하면서 계속 사랑의 밀고 땅기기를 늦추지 않았다. 항상 K의 불만이라면 오빠의 데이트 장소가 맘에 안 들었다. 남들은 무리해서라도 분위기 좋은 비싼 곳으로 데리고 가 여자를 즐겁게 해 준다는데 오빠는 항상 허름한 곳을 찾아갔다. 연애 시절부터 이렇다면 이거 볼 장 다 본 것 아닌가 싶기도 하여 데이트를 해 말아 하며 갈등이 생겼다. 그러나 오빠를 잘 알고 있는 주위사람들은 오빠는 능력 있고 가진 것도 많다고 했기에 그냥 따라다니게 되었다.
오빠는 젊은 나이에 보석에 미쳐 아주 조그만 보석 가게를 차렸는데 IMF다 뭐다 해서 살기가 모두들 어려워지고 그래서 보석을 사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어서 가게 렌트비도 못 내는 처지가 되어 그만 보석가게를 문 닫고 말았다. 그 덕에 장사하다 남은 처분도 할 수 없는 보석들이 남아 있었다.
“오빠, 나에게 준 에메랄드 참 좋더라. 친구들이 무척 예쁘다고 했어.”
“그래, 이 오빠가 뭐 하나 더 줄까?” 오빠는 방안에 숨겨놓은 금고를 열어 보석상자를 꺼냈다. 상자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보석들이 가득했다.
“이것과 이것 나 맘에 든다.”
“그래? 그것과 그것 너 줄께.” 오빠,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K가 좋아하면 오빠는 덩달아 좋아했다. K는 보석에 맘이 뺏겨 오빠가 원하는 결혼신청을 받아들였다.
결혼을 하고도 오빠는 K에게 때가 되면 금고에서 하나씩 보석을 꺼내 주었다.
“자, 발렌타인 데이야. 하트모양의 빨간 이것 어떠니?” “자, 너 생일이지. 너의 탄생석인 다이야몬드다.” “자, 우리 1주년 결혼 기념일이지. 네가 맘에 드는 걸로 하나 골라 봐.”
오빠의 금고 안의 보석상자는 날로 비어만 가고 K의 보석상자는 날로 늘어만 갔다. 하지만 K는 전부를 갖고 싶었다.
“오빠, 나 얼마만큼 사랑해?” “하늘과 땅만큼.” “그럼 내가 원하는 보석 나에게 다 줄 수 있어?” 오빠는 놀라 대답을 못한다.
“이거 전부 다?” “그래, 난 오빠의 부인이야, 내가 갖을 권한 있는 것 아냐?” “그래도 그렇지. 이거 전부를 말야?”
K는 날을 잡아 오빠와 담판을 걸기로 작정했다.
“오빠, 가진 것 다 내놔! 안 내놓으면 이혼이야.”
날벼락 같은 소리에 오빠는 어쩌지도 못하고 있다. 그저 보석 상자를 손에 꽉 쥐고서 K에게 넘겨주질 못하고 있다. 이젠 폭력 밖엔 없다.
“오빠, 이리 줘. 전부 내 것 해도 되잖아? 오빠가 무슨 이런 보석이 필요 해.”
오빠는 기가 막혀서 웃느라고 하마터면 보석 상자를 놓칠뻔 했고 K는 신이나서 웃느라고 보석 상자를 거의 손 안에 넣고도 놓치고 말았다. 이젠 죽기 살기로 몸 싸움을 시작했다. K는 도저히 힘으론 안 되니까 개처럼 사랑하는 오빠의 손을 물어 뜯었다. “아야야!” 오빠는 괴성을 지르며 나자빠진다. K는 보석 상자를 낚아채서 옆 방으로 잽싸게 튀었다. K가 미리 준비해 둔 금고 안에 보석 상자를 쳐 넣고 잠가 버렸다. 오빠는 아직도 죽치고 앉아 허탈하게 웃고만 있었다. K는 승리의 기쁨으로 오빠에게 달려가 물어 뜯은 손을 개처럼 핥아가며 최대의 서비스를 해 주었다.
“오빠, 아프지?” “오빠, 고마워.” “오빠, 그냥 포기 해.”
K는 매일 일과 중에 금고를 열고 반지, 귀걸이, 목걸이를 끼웠다 뺐다 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오는 손님에게는 반드시 오빠는 기념이라면서 K재산인 보석을 그들에게 주곤 했었다. K 가족에게 줄 때는 아깝다고 생각이 안 드는데 시댁 식구에게 주는 것은 조금 아깝게 생각되었다. 시누이가 놀러 왔다 떠나는 날 예상대로 보석 얘기를 꺼내며 K에게 시누이 선물 주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시누이인데 드려야죠. 맘에 드는 것으로 골라 잡아보세요.”
선심 쓰듯 선뜻 내 주었다. 그런데 오빠는 또 딴소리다. 시누이의 딸 선물까지 주란다. K는 보석이 자꾸 줄어간다고 생각되어 심술이 났다.
“오빠, 이 보석 내 것이야. 나 더는 못 주겠다. 조카딸 선물은 생략.”
하며 토라졌다. 오빠는 난처한 표정이다. K가 설마 못 주겠다고 말할 줄은 예상을 못했었나 보다. 그렇게 시누이가 떠나고 난 후 K 마음은 후회가 막심했다. 아직도 많은데 그냥 하나 주면 될 걸 하고 뒤늦은 자책감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승리의 기쁨도 잠깐 그 후로 찾아오는 기쁜 행사 날들이 되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
“오빠, 오늘 발렌타인 데이인 것 몰라?” “너 잊었어? 그 많은 보석들.” “알았어.” “오빠, 오늘 내 생일이잖아?” “그 보석들…” “에이 씨” “오빠, 오늘 우리 결혼 기념일인데.” “ 그 보석…” “으앙, 오빠 이 보석들 도로 다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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