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갤러리

내가 무를 먹는다는 것

이난순2024.05.29 11:53조회 수 16댓글 0

    • 글자 크기

 

 

 

키 자라는 아이들 하굣길엔

언제나 배가 고팠다

지름길 승주골 들어서면 한적했다

 

시퍼렇게 망보던 무청은 잘라서 던져버리고

앞니 세워 무를 벗기면 껍질 배가 돌아 순순하다

가는 그물망 실핏줄 두른 몸

흰 푸른 속살 이빨에 베이고

입 안에서 산 채로 단내가 웃었다

배고픔에 무 서리는 용서되던 시절

 

아파트 장터 서던 날 붉은 황토 묻은 무

다발로 묶여서 단체로 쳐다본다

아니, 유년 시절에 만났던 너희들

그날 이후 우리 집 냉장고엔 하얗고 통통한 무가 살고 있다

 

먹다 보면 맛의 과녁판 같아

중심부엔 철렁한 수로,가으로 갈수록 단단해지며 단맛은 조금씩 짙어지고

때로는 매운맛

 

어렸을 적 선반에서 몰래 먹었던 사과 한 알

혼나던 종아리 알싸하다

조상님 제사에 올리렸던

 

얼얼한 종아리 기록으로 남아

나를 살피는 반딧불 이었다

 

해소로 잠 못 드는 밤을 달래주고

치렁한 국수 가닥 녹여줄 꿈을 꾸며

네모로 썰어질 깍두기로 거듭나기를 기다리는 무

 

하얀 벽장 속에서 뒤척인다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 2014년 콜로라도 덴버로 이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제6회 애틀랜타신인문학상 대상 수상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30 체리크릭 파크에서4 2023.07.30 100
129 오늘도 맷돌 보수하러 간다6 2023.11.18 86
128 그녀, 가을되다7 2023.11.26 85
127 변신은 달빛 아래서6 2023.12.15 84
126 빨간 벤치 2022.01.21 78
125 강을 건너다8 2023.07.07 77
124 매미의 기도8 2023.07.26 73
123 그녀의 등5 2023.09.23 71
122 꼬리 밟힌 지능범10 2023.06.03 70
121 길 위에 음표를 그리다4 2023.10.07 65
120 가을 물드는 소리4 2023.09.07 65
119 어느 가을 달밤에6 2023.02.23 64
118 나팔꽃 귀 되어8 2023.06.29 63
117 비 온 뒤엔 황톳길을 걷자 2022.09.17 61
116 뒷뜰 대숲엔 2022.02.16 61
115 목 화 밭 2022.01.04 61
114 한아름 가득 가을 안고 온 친구 2022.10.08 59
113 연보라 가죽신4 2023.06.04 58
112 대숲 그리고 바람과 나 2022.02.20 58
111 종이 비행기 2022.01.23 58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