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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를 먹는다는 것

이난순2024.05.29 11:53조회 수 2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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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자라는 아이들 하굣길엔

언제나 배가 고팠다

지름길 승주골 들어서면 한적했다

 

시퍼렇게 망보던 무청은 잘라서 던져버리고

앞니 세워 무를 벗기면 껍질 배가 돌아 순순하다

가는 그물망 실핏줄 두른 몸

흰 푸른 속살 이빨에 베이고

입 안에서 산 채로 단내가 웃었다

배고픔에 무 서리는 용서되던 시절

 

아파트 장터 서던 날 붉은 황토 묻은 무

다발로 묶여서 단체로 쳐다본다

아니, 유년 시절에 만났던 너희들

그날 이후 우리 집 냉장고엔 하얗고 통통한 무가 살고 있다

 

먹다 보면 맛의 과녁판 같아

중심부엔 철렁한 수로,가으로 갈수록 단단해지며 단맛은 조금씩 짙어지고

때로는 매운맛

 

어렸을 적 선반에서 몰래 먹었던 사과 한 알

혼나던 종아리 알싸하다

조상님 제사에 올리렸던

 

얼얼한 종아리 기록으로 남아

나를 살피는 반딧불 이었다

 

해소로 잠 못 드는 밤을 달래주고

치렁한 국수 가닥 녹여줄 꿈을 꾸며

네모로 썰어질 깍두기로 거듭나기를 기다리는 무

 

하얀 벽장 속에서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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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는 기억하고 있다 의사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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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 2014년 콜로라도 덴버로 이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제6회 애틀랜타신인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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