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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만남의 희열

강창오2022.01.19 00:59조회 수 16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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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애문 신인상 2번째 제출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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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찾아오는 새날이지만 한결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은퇴생활……
  

   코로나로 인한 오랜 시간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모두의 생활공간을 압박하지만 은퇴자의 구태의연한 생활은 별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어떤 날의 작은 변화가 다시한번 나의 존재의식을 깨우쳐주는 일각임을 절감하곤 한다.
  

몇일전 오후 대문을 나서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별다른 계획없이 일상적인 일을 마치기 위해 연장된 움직임의 하루였다. 발걸음의 시작은 오랜만에 산책아닌 산책으로 이어졌다. 차를 타고 수퍼에 가다가 불현듯 조금이라도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멀찌감치 차를 대놓고 수퍼에 갔다가 다시 차쪽으로 걸어오던 길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10세 정도의 인도계로 보이는 어린 남학생 세 명이 하교하는 중인지 신나게 장난치며 나를 앞질러갔다. 한 명은 자전거를 탔고 두 명은 자전거 속도에 맞춰 뛰기도하고 멈추기도 하면서 갈길을 향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 자전거를 탄 아이가 한 손에 콜라캔을 만지작 거리며 가길래 콜라캔을 어떻게 할건지 하는 은근한 호기심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콜라캔을 훌쩍 길위에 던져버리는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쯧쯧하며 줏으려고 다가갔다. 그 찰나에 나머지 두 아이의 즉흥적인 반응이 흥미로웠다. “줏어, 줏어” 하면서 장난스럽게 자전거 앞을 막으며 맴돌았다. 하지만 자전거탄 아이는 그냥 팔짱을 낀채 모르쇠로 태연한 자세였다. 요즘은 아무리 어린 아이들에게라도 함부로 말 못하는 시대다. 그래서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두 아이들의 장난기에 동참하는척 큰 웃음을 지으며 “줏어, 줏어” 하고 박자를 맞췄다. 지나가는 노인의 뜻하지 않은 간섭에 아이들이 어떻게 나오려나 처음에는 좀 궁금했다. 그렇치만 이미 공이 그 쪽으로 던져진 상태였다.
  

   세 아이가 잠시 흠칫 놀라는 모습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두 아이가 낄낄거리며 “거 봐, 거 봐” 하면서 자전거탄 아이를 놀려대는게 아닌가! 그때서야 마지못해 자전거에서 내려 캔을 집어들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히야! 나는 그들에게 간섭한데 대한 항의를 받을 준비를 했는데 반대로 순수하게 내말을 듣다니, 기특하기도 했지만 참으로 신기한 생각까지 들었다.
  

   얼마를 더 가지 않았는데 그 아이가 다시 자전거에서 내려 캔을 발로 밟기 시작했다. 다시 작은 궁금중이 발동했다. 놀랍게도 납작해진 캔을 바퀴와 바퀴집사이에 끼워 넣는것이 아닌가? 아마도 손으로 계속 들고가기 싫어서 바퀴에 끼워 가져갈 모양이었다. 그 순간에 옆으로 지나치면서 “캔이 끼이면 바퀴가 안돌텐데, 잘해봐라” 라고 말을 던졌다. 캔이 끼인 바퀴가 돌리가 없었지만 계속 페달을 밟으며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이 정지하고 있는 모습을 뒤로하며 얼마쯤 더 갔을까? 갑자기 등 뒤에서 “바이” 하는 합장소리가 들렸다. 뭔가 어리둥절해하며 뒤를 돌아보니 세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지 않는가?
 

   아까 “줏어, 줏어” 할때도 그랬지만 이번엔 더 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작별인사를 받고보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질새라 아이들의 작별인사에 대한 보답으로 힘차게 “바이”하며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이렇게 작고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만감이 교차하면서 요즘같은 세상에 아직도 이런 순진한 아이들이 있다는것이 놀라웠다. 앞서, 간섭같이 던졌던 지나가는 노인의 몇 마디를 아무런 이의없이 들어주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그토록 순진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서 ‘바이’의 인사를 보냈주었던 아이들의 질서있는 행동이 참으로 고상하고도 놀랍게 느껴졌다. 무슨 노인네가 별참견이냐고 욕이나 안먹었으면 다행이었을텐데……
  

 

   아무튼 신선한 충격이 에너지로 다가온 오후였다. 물론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라서 내일이면 까맣게 잊어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순수함과 이치적인 사고가 인격형성의 좋은 양식이 되어져 성공적으로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램이다. 수퍼를 가던중 차를 세우고 억지의  산책길로 들어선 행차가 다시한번 보람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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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into oblivion A joy of a brief enco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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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유학
- BBC방송국 Personnel, Journalist Training & Occupational Health Depts.
- The British Library, Oriental and Indian Office Collections
- 재직시 The Poetry Society(London)회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애틀랜타신인문학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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