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갤러리

그녀의 등

이난순2023.09.23 11:04조회 수 71댓글 5

    • 글자 크기

속살 보이는 희끗한 퍼머 머리 그녀

두 손 가락 모두어 부풀려주고 싶다

 

부지런히 어깨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손,

바늘에 걸린 까만 실이 똑딱이 단추를 맞추고 있는 순간이다

찍찍이로 붙여 달라는 주문에

빽에는 재봉 박음질 할수없다고

 

길다랗고 둥근 플라스틱 실패들,

색색이 다른 실들 감긴 채 도열하여 그녀 에워싸고 있다

좌우로 재봉틀 세 대도 그녀를 호위하 듯 버텨주며,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

저마다의 사연들로

그녀 손 끝에서 다시 태어나니 뽐낼만하다

 

재봉틀 소리 가득 담긴 뒷 목

거북등 닮아 불룩하다

 

등에 업혀  잠투정하던 아이들의 침 얼룩져 있고

헤어진 옛 애인의 애잔함이

구깃한 주름살 속에 숨어있다

쉼없이 달려온 발자국 소리 들리는 듯

 

까만 핸드백의 겉 호주머니,

속으로  똑딱이 단추 감춰있다

더는 새어 나가지 않을 나의 비밀

내 허술함이 그녀 등에서 미소짓고 있다

 

 

    • 글자 크기
오늘도 맷돌 보수하러 간다 숨어 있는 쥐

댓글 달기

댓글 5
  • 윤기없는 희끗한 머리

    오랜 세월 자리잡은 굽은 등

    애잔한 모습이지만

    야무진 손 끝에서 다시 태어나

    당당히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들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고 있네요

     

    작은 만남, 순간들에서

    시를 길어 올리는 난순님의 열정, 감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 이설윤님께
    이난순글쓴이
    2023.9.24 00:31 댓글추천 0비추천 0

    깊이 사고 하고, 써야 하는데 너무 쉬이 써 놓고 이담에 또

    한참을 후회할 날이 오겠죠?

    퇴고를 거듭해야 하는 그때엔 아마도 부끄러워 얼굴 붉어지겠지요!

    고맙습니다!

  • 작은 소재를 갖고 폭을 넓혀 쓸 수 있는 시인이 되었으나

    독자를 위한 연결이 좀 아쉽습니다.

    그러나 관찰력과 감성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 훤히 보이는 앞 모습 보다

    다 가려진 등의 모습에서

    더 많은 사연이 보여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굽어진 등에서요.

  • 강창오님께
    이난순글쓴이
    2023.10.4 12:15 댓글추천 0비추천 0

    우리의 부모님 세대의 등에선 모두 사연들이 많이 숨겨져 있었겠지요.

    자식들 밥 한 술 더 먹이려고.


-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 2014년 콜로라도 덴버로 이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제6회 애틀랜타신인문학상 대상 수상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28 꼬리 밟힌 지능범10 2023.06.03 70
127 나팔꽃 귀 되어8 2023.06.29 62
126 강을 건너다8 2023.07.07 76
125 매미의 기도8 2023.07.26 72
124 그녀, 가을되다7 2023.11.26 82
123 변신은 달빛 아래서6 2023.12.15 84
122 어느 가을 달밤에6 2023.02.23 62
121 아버지의 퉁소6 2023.05.21 55
120 오늘도 맷돌 보수하러 간다6 2023.11.18 86
그녀의 등5 2023.09.23 71
118 숨어 있는 쥐4 2024.02.29 50
117 할머니의 심중4 2024.03.14 39
116 야외 잿떨이4 2023.04.30 37
115 그를 떠나 보낸 봄비4 2023.04.27 32
114 화살나무4 2023.04.14 35
113 불시착4 2023.03.19 42
112 연보라 가죽신4 2023.06.04 58
111 체리크릭 파크에서4 2023.07.30 98
110 가을 물드는 소리4 2023.09.07 62
109 길 위에 음표를 그리다4 2023.10.07 64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