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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체리크릭 파크에서

이난순2023.07.30 06:17조회 수 98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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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뜰에 세워 놓은 자전거 꺼내어 공원길 산책하러 나선다. 집에서 십여분 안팎이면 입구에 들어 서는 공원에선 봄향기로 가득 차 있다. 물 가에 아주 많은 하얀 초록의  나무 꽃에서 나는 냄새로.  그 나무에선 한달여 동안 향기를 뿜는다 열매 맺기 전까지 꽃은 차례로 피어대니까. 나뭇잎 색이 기이해서 나는 혼자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얀 초록나무 라고. 그런데 알고 보니 러시안 올리브 나무라고 한다 .

 

  그날도 신이나서 야생의 드넓은 초원길을 달렸다 .곳곳엔 동물들, 사람들이 지나도 무심히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

구릉진 언덕을 지나서 부터는 웬지 자전거가 속도를 내지 못하여 난 엑셀을 높여본다 .허지만 이상하리 만치 페달을 밟아도시원치 않으며, 내리막 끝에 가서는 자전거가 완전히 서 버린다 .나의 코스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할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핸들을 잡아 끌고서 나의 다니던 길을 조금은 더 가본다. 아차, 이젠 바퀴가 구르지도 않는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바퀴는 펑크가 나있고 생채기가 난 모양이다. 끌을 수 없으니 자전거 들고 갈 수밖에

싱싱 달릴때는 그렇게나 날렵하고 가볍게 느껴지더니 어찌나 무겁던지 땀을 뻘뻘 흘리며 몇 발짝 가다가 쉬고, 또 몇 발짝 옮기다쉬고.... 울고 싶다! 사람들이 지나며 괜찮냐고 물어 나는 고갤 끄덕여 주었지만 실은 난감하였다.

 

 그런데 저 앞에서 오는 할아버지, 자전거의 속도를 늦추더니 내 앞에 와서  멎으며 도움이 필요할거 같다고 한다. 난 눈물이 핑 돌것 같아 잠깐 심호흡을 한다음 고맙다 인사하며, 말썽장이 자전거를 그 앞에 보여주었다

그는 등에 멘 작은 백을 열어 장비들을 쭈욱 늘어놓으며 점검하더니,타이어를 바퀴에서 분리하여 속에 있는  튜브의 상처난걸 빼어버린다. 기구를 다루다가 손가락에서 피가났다. 난 깜짝 놀라서 얼른 티슈로 닦아주는데 그는 대수롭지 않은듯 기름때 묻은 손으로 여기저기 매 만지며 땀을 흘린다. 손가락에서 흐르던  피는 멎은듯 더는 흐르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삼십여분을 씨름하더니 이젠 끌고 갈수 있을 거라며 바퀴를 돌려본다.자전거 수리를 잘 하는곳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는데, 사위가 이런거 잘 할수있으니 집에 까지만 가면 괜찮다고 감사만 했다.

 

 가져온 보온병에서 따뜻한 차 한잔으로 작은 보답을 하니 , 향이 참 좋다며 웃는 모습이 소년 처럼 해맑다.  그래도 차 라도 드릴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앞 이마에 몇가닥  하얀 곱쓸머리 바람에 날리며 파란눈의 그윽함은 참 매력적으로 보인다. 나의 이름을 말해주며 그의 이름을 물어보니, 한번에 알아들을 수 없어 다시물어 보아야 했다. 미국 사람들의 이름은 때로는 너무 길어서 외우기가 쉽지않아 난처할때가 많다. 딸을 시켜서 감사한 마음 다시 전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번호 까지 물어서 메모하여 두고 ,자전거 수리 장비를 챙겨 백에 넣는 그의 모습 바라보며 나의 할아버지가 잠깐 떠 올랐다.

 

 무겁게 들던 자전거는 이제 핸들로만 끌어주니 여간 수월한게 아니다. 집으로 향하면서 그 분 손가락에 난 상처가 덧나지 않고 잘 아물기를 기도하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뻐근했던 어깨도 편해졌고.  저쪽 언덕에선 사슴 두 마리가  잠깐  쳐다보다가 풀밭에 고갤 숙이는게 보이고, 다시 봄의 향기가 맴돈다.개울에선 물 흐르는 소리 언뜻 언뜻 들리며, 보라빛 엉겅퀴꽃 무리속을 날아다니는 나비들도 눈에 띈다.  할아버지 이름을 입속으로 외우며, 나도 누구엔가 갚아야지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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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아직도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셔 세상을 조금 더 낫게 해줍니다

    남을 위해 수고와 시간 내주는것이 아까운 사람들도 많치만...

  • 강창오님께
    이난순글쓴이
    2023.8.1 09:33 댓글추천 0비추천 0

    대체로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는걸 느꼈어요

    그리고 나누는 기쁨을 알고 있는 것도요.

    물론 더 깊숙히 들어가 보면 어떨른지는 모르겠지만.....

  • 지난번에 얘기했던 수필의 기본적인 문단 나누기 조사 쓰기등을 추가해서 (서론이 너무 김)

    다음달 합평 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퇴고를 많이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강화식님께
    이난순글쓴이
    2023.8.3 08:28 댓글추천 0비추천 0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


-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 2014년 콜로라도 덴버로 이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제6회 애틀랜타신인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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