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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고목(枯木)의 역사

강창오2023.06.24 12:12조회 수 288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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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고목(枯木)의 역사

The history of a dying tree by ivy

 

“이게 무언가?”

아늑하기만 했던 반려의 손길들이

내 목덜미를 거머쥐기 시작했을 때
선뜻 끼쳐진 소름

천진난만 했던 파란 눈망울들이

메두사의 서슬 시퍼런 눈이 되어

검은 미소 속에 거친 숨결을 토해낸다

 

뿌연 기억속의 지난 날

문득 발가락을 간지르며 선보였던 파란동이 넝쿨 잎 하나

빤히 올려다보는 천진한 부름에 그만 흠뻑 취해버렸다

첫 만남속에 움트는 작은 몸부림이 너무 가여워

선뜻 받쳐주고 보듬어주고 기특하다 했었다

 

내 허리춤을 움켜 잡았을 때도
꿋꿋하게 뻗어 오르는 어린 동무의 고투에
아낌없는 보루가 되어
온정을 쏟으며 힘내라 마냥 격려해 주었다

 

흐르는 세월을 탓하랴

잘 자라는 대견함에 너무 맥을 놓았던가

어느덧 여린 실낱들이 검은 아귀의 밧줄이 되어

한 줌씩 한 줌 씩 내 숨결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뒤 늦게 온 몸을 흔들어 떨쳐보려지만

겹겹이 쌓아 올려진 포승이 더욱 더 조이기만 한다

“아차 이젠 늦었구나”

때늦은 후회가 머리속에 엉킨다

딱딱한 흙을 비집고 솟아 오르는 파란동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그 긴 세월 동안 조건없는 사랑의 담벽이 되어 주었건만

베풀어준 사랑을 음흉한 덫으로 엮어

내 생명을 요구할 줄이야

시소를 타고 오르내리는 배신의 유희가

마지막 한 줄기 호흡을 갉아 마신다

내 육중한 자태와 기력이 까맣게 사그러져 간다

숨박꼭질로 다듬어진 고통마저 식어버리자

순간, 사이에 뜬 노란 공간이 사뭇 평화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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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전문 병원/ A fasting specialist clinic The history of a dying tree by i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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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 정말 멋지고 깊이 있는 그러면서도 잘 짜여진 하이브리드 시가 나왔네요.

    신춘문예용 입니다. 제목만 조금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 강창오글쓴이
    2023.6.26 06:41 댓글추천 0비추천 0

    좋게 평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길가를 지나다 한 구석에 서있는 거대한 마른 고목이 담쟁이에 쌓여있는 것을 보고 문득 그 고목이 겪었을 과정을 연상 해 봤습니다

    나무지만 참 안 되 보이더군요.

  • 저도 동감이에요. 지금까지 쓰셨던 선생님의 시 중에 으뜸이신것 같아요. 그동안 공부 많이 하셨군요.

    신춘문예용이라고 하시니 주저마시고 출품하세요. 응원합니다.

  • 이경화님께
    강창오글쓴이
    2023.6.27 09:42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으뜸 시로 봐주셔서...

    공부는 손 논 지가 까마득하네요.

    그 고목을 바라보는 순간 웬지 진지한 기분이 들어서 좀 더 신중하게 글을 모아봤습니다

  • 모두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앞으로 나아간다

    푸르게 그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힘들 때 이 시를 읽고 담쟁이를 좋아했는데

    오늘 선생님의 시를 읽고 아! 하고 탄성이 나오며

    한 쪽 면만 생각했던 작은 시야가 확 열렸습니다

    담쟁이 자체가 소망과 배신 이중적인 기능 요소를 갖고 있는

    Hybrid시인 같습니다

     

    독특한 시적 언어와 깊은 사유가 깔려있는 고품격의 시

    잘 감상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이설윤님께
    강창오글쓴이
    2023.6.27 09:52 댓글추천 0비추천 0

    "푸르게 그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동시 상대의 승리와 패배 아주 절묘한 대조입니다

    Survival for the fittest! 약육강식

    슬프게도 이런게 우리 삶 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 깊이 잠재되어 있잖아요.

    긍정적인 평가에 많이 감사합니다

  • 전 질문을 하나 하고 싶어지네요

    사이에 뜬 노란 공간의 의미가 알고 싶어서요

     

    근육질이 단단한 메타세콰이어길에 담쟁이가 붉게 기어올라들며

    가을 단풍이 한창일때를 봤었습니다

    나무들 마다에.

     

    오늘 강샘님 글 읽으며 인간들 사회에서도 난무하는 그런 상황들이

    고스란하게 느껴집니다 . 멋진시 감사합니다

     

    우리 문인회에서 신춘문예 당선 된다면 얼마나 큰 경사일까요! 넘 신날거 같습니다

    우리 모두 두근거릴거 같습니다 강화식 회장님이 인정해 주시니 저희도 기대하면서....!

  • 이난순님께
    강창오글쓴이
    2023.7.2 08:47 댓글추천 0비추천 0

    ㅎ 난순님 - 신춘문예가 뭔지 모르지만 어쨋든 근사한 타이틀이네요.

    네, 인간들 사회에서 난무하는 현상이지만 아주 대표적으로는 무조건적 사회주의 추구가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사람은 목숨이 다하면서 순간적으로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네요.

    아울러 평화스럽게 빛의 터널을 보기도 하구요

    그래서 거목의 마지막 순간을 여기다 비유한 겁니다

  • 깊은 思惟의 시 감상하며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한 나의 생의 문장 한 줄 가져다 붙입니다

     

    고목이 된 내 삶의 히스토리 처럼 허물어버린 관용의 경계에서

    서서히 고사하는 운명을 받아드리며 살고있습니다

    공적을 숲처럼 쌓아올리며 살아도 直木先伐(직목선벌)처럼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요

     

  • 석촌님께
    강창오글쓴이
    2023.7.3 13:51 댓글추천 0비추천 0

    "관용의 경계에서 서서히 고사하는 운명"

    현자들의 아름다운 삶의 마감법이라 보고 싶습니다.

    直木先伐(직목선벌)은 아이러니로 꽉 찬 인생의 대표적인 예 라고 생각합니다.

    By the way, 평소에 그토록 여유있고 삶에 대해 stoic한 노인 친구들도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죽음에 대한 조바심을 나타내더군요.

    저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종교를 떠나서든 아니든 내세가 참으로 신기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더욱 더 커집니다


- 영국 유학
- BBC방송국 Personnel, Journalist Training & Occupational Health Depts.
- The British Library, Oriental and Indian Office Collections
- 재직시 The Poetry Society(London)회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애틀랜타신인문학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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