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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김수린2018.02.06 13:55조회 수 16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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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김 수린
8 박 9일의 이태리 여행이 끝났다.  로마에서 필라델피아까지 열 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애틀란타까지 두시간 반, 중간에 공황에서  기다리는 3 시간을  제외하고라도 13 시간 이상을 좁은 비행기 좌석에 갇혀 있었다.
앞 좌석에 붙은 공책 크기 만한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다, 
비행기 소음에 섟여 이어폰으로 들리는 소리를 들으려 집중하다 보니 머리가 아프다.  책을 꺼내들고 읽어보려 하지만 안 그래도 침침한 눈에  글씨가 가물가물하다.  불면증 때문에  비상용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수면제를 먹어도 비행기 안에서는 잠이  안 온다.  다리를 올렸다가, 오른쪽으로 앉았다가  왼쪽으로  돌아앉았다가,  어떻게 자세를 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열시간쯤 몸부림을 치다가 비행기에서 내리니 정신은 멍하고 허공을 걷는듯 다리가 휘청거린다.
마중나온 아들 차를 타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이것 저것 안부를 묻다가  사업 파트너이기도 한 아들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일 들을 물어 본다
 "오피스는 어땠어?  직원들은  잘 하고 있고?  새로 들여온 X-ray기계는 시스템하고 잘 연결됐어?"
내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하던 아들이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여행은 어땠어?" 하고 묻는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여행을 갔다 왔구나.  집에  도착 하자 마자 또 다시 일에 몰두 하고 있는 나를 돌아본다.  아들이 다시 물었다.
"어디가 가장 좋았어?"
어디가 가장 좋았던가? 
"폼페이!" 
대답을 하고 보니 왜 폼페이 일까 싶다.
좋았다기 보다는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아니었을까?
좋기로 말하면 늘 그림으로 보며 동경해 왔던 아름다운  바닷가 휴양지 소렌토가 아닌가?  풍광이 좋기로 유명해서 유럽 귀족들의 휴양지가 된 소렌토.  왼 쪽은 90 도 각도로 깍아지른 듯한 절벽, 오른쪽은 바다를 면한  해안 도로를 달려가면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 색갈의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십일월의 화창한 햇살에 하얗게 반사되는 언덕위의 예쁜 집들이 보이는 곳.
그곳 보다 로마 여행의 백미라 할수있는 바티칸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은 정말 인상깊은 곳이 아니었던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설명에 걸맞게 그 장엄하고 웅장한 규모는 표현할수 조차 없게 어머어마하며, 바티칸 박물관 안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포함된  천정벽화을 목 아프게 우러러 보고, 총천연색으로 모자이크된 대리석 바닥을 내려다보며, 셀수 없이 많은 정교하고 화려한 미술품과 조각상을  돌아 보며 감탄을 넘어서 경이롭고 엄숙한 마음이 들지 않았던가?
아니면 로마 병정역활에 어울릴만한,  윤각이 뚜렷한 검은 머리의 이태리  청년이 곤도라 선미에 서서 노를 저어  좁은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뒷 골못을 돌때,  검은 이끼가 잔뜩 끼어 있는 대리석 기둥들과 수면위의 그 고풍스럽고 반듯한 건축물들은 또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평화의 기도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성 프란체스코의 성당이 있는  바람부는  언덕위에서 바라본  아시시 도시, 덤으로 20세기를 풍미한 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정원에 둘러쌓인 노란색 별장도  보았었지.
그러고 보니 밀라노, 피사의 사탑,  피렌체, 콜로세움, 스페인 광장, 진실의 입 ... 두서없이 귀에 익은 지명들이  떠오른다.  정말이지 이태리는 나라 전체가 유적지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곳인데,  폼페이는 그 모든 유적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를 압도한 곳이다.
폼페이 매표구를 지나  길 좌우로 벽만 남겨진 집터 모양의 페허를 보면서  언덕에 오르면 로마 건축물 특유의 거대한 기둥들과 신전벽들이 남아있는 넓은 광장이 보인다. 그 광장 중앙을 따라 내려가면 돌로  깔아놓은  거리 좌우로 상가 건물의 잔재와 주택들, 공동 우물들이 있고 이 골목  저 골목 돌아 가면 지금도 거의 완벽한 모양으로 남겨진  돔 모양의 커다란 공중 목욕탕, 벽화가 그려진 유흥가등이 보인다.  잡초가 뒤 덮힌 내부 바닥들을 보며 2000여년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번성하고 분주했던  도시 생활을 상상해 보게된다.  오늘날 우리네의 일상과 다를것 없는 그들의 삶.  아침을 맞고 식사를 하고, 사기도하고  팔기도 하고, 신전을 찿고  오락을 즐기고 사랑하고 원망하기도 하는 그런 하루 하루.
그들의 그 평범한 하루가 서기 79년 8월 24일 오전에 돌연히 마감되었다.  베수비오 화산의 분출로  도시전체가 4 미터 이상의 화산재와 부식물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것이다. 
 그리고 이천여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복구된 페허위를 걸으며  그 절박하고 처절했을 도시민들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자연앞에 속수무책, 속절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새삼 절감한다. 
관광 가이드가 "자!  여기서 사진을 찍읍니다.  적군이 오기전에" (그는 다른 단체 관광객들을 그렇게 불렀다).   우리는 줄을 서서 자기 차레가 되면 준비된 전화기를 그에게 건네고 포즈를 취한다.  혼자  온 사람은 혼자서, 부부는 부부끼리  또는 몇 사람이 함께.   손가락으로 V 를  만들어 얼굴에 대기도하고 두팔을  머리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한쪽 다리와 한 팔을 올려 기우뚱한  자세를 만드는 등,  제각기  한껏  멋진 포즈를 취해본다.
키가 훌쩍 큰  가이드가 엉거주춤, 거의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사진을 찍어주며,  
" 자 찍고 빠지고,  찍고 빠지고,  적군이 몰려오고 있읍니다" 
 하면서 은근 재촉을 한다.
 나는 가이드의 역활이  단순히 유적지 안내와 그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폭넓은 연령층의 단체 손님들 모두의  관심과 흥미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20년 경력의 우리 가이드는 어느 역사 학자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과  적당한 유머,  여운 있는 까칠한 재치로  우리 모두의 보호자겸 안내인으로 손색이 없는  카리스마 넘치는 훈남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발견한  가이드의 중요한 역활중의 하나가  바로 가이드가 사진 작가의 역활까지 겸해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유적지 어느 지점에서 어떤  구도로 사진을 찍어야 가장 기념이 될만한 사진이 될수  있다는것을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 클릭 하나로 지구촌 어디든, 나아가서 천체 까지 보고 들을수 있는 이시대에,  시간들여 불편함을 감수하며  굳이 여행을 하는 이유중 하나가 그 역사적인 장소에 내 발로 서서 나의 얼굴이 들어간 기념사진  하나 찍는것 아닐까?  
내 차례가 되어 남편과 포즈를 취해 보았다.
무너진 신전 기둥과 개선문 같은 성벽 건물을  좌우로 하고  광장 한 복판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저 멀리 폼페이를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산  봉우리에 구름이 걸린채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같이 태고적 부터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그러고 보니 폼페이 유적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 베수비오 화산이 아닐까.
영원히 남겨질 것이란 꿈을 가지고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과 건축물을 만들며 열정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남겨진 것은 페허가 된 건축물의 잔재뿐. 
그리고 제가끔의  삶의 무게를 지닌채  오늘 이 페허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  그 세월, 그 인생 모두를 무심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맞고 있는 저 산,
누군가가 내게 다시 이태리 여행중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역시 폼페이 그리고  베수비오 화산이라고 말 할것 같다.

김수린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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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 의사
- 현재 둘루스 소재 개인치과병원 운영
- 제2회 애틀랜타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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