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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둘째 딸의 진자리

강화식2023.06.18 14:05조회 수 67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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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둘째 딸의 진자리                연선 - 강화식

 

 

 

 

 

세상 빛을 처음 본 날

 

오는 진자리는 윗목이었다

 

둘 째 딸로 태어나서

 

 

 

9년 만에 얻은 첫 아들인 아버지

 

금강산에 가서 기도한 친할머니 덕에 쫓겨나지 않은 어머니

 

그 후 딸 셋을 더 낳고 막내 아들을 낳은 집 장남

 

 

 

가족과 열 일곱 살에 헤어졌다

 

공부 잘한 아들이 농사 짓는 모습이 싫어

 

가축을 판 돈과 쌀 자루를 안겨주며

 

대처로 가서 공부를 하라는 엄마의 명을 받고

 

아버지 모르게 떠난 황해도 옹진

 

 

 

그 후 평생 엄마와 장남은 얼굴 마주보지 못하고

 

무언의 희망과 원망과 한을 품고…..

 

 

 

아버지는 자신의 배경 때문인지 눈길을 가둔 둘째 딸을 위해

 

중학교 교문 앞에 찾아왔다 가둔 기억이 미안해서

 

버스를 타고 같이 오면서 처음 하던 말

 

네가 아들로 태어나면 좋았을 텐데

 

 

 

반가움이 설움으로 뒤바뀌어 한마디도 못했다

 

아버지와 둘 째 딸이 처음으로 애증의 씨를 뿌린 날

 

가끔씩 가방에 넣어놓은 비상금은 미안함의 열매인가

 

 

 

남동생 둘을 본 엄마는 장남의 부실에 온 신경을 쓰고

 

2년 터울이 채 안된 딸은 늘 변방인 다락방에서

 

홀로 하모니카를 불며 책에다 마음을 담고

 

 

 

글자 속을 헤매며 둘째의 설움을 잊는다

 

티코라는 이름을 지은 일기장에 글을 쓰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충격을 받아  

 

날아다니는 벌레가 되고 싶기도 했던 사춘기

 

 

 

졸업 선물로 광화문 비제바노에서

 

긴 부츠를 사준 기억만 안고 살다가

 

튄 이데올로기로 마음 아프게 한 불효

 

 

 

결혼하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이민을 가던 날

 

네가 없어서 심심해서 어떻게 살지

 

맥없는 말 한마디와 함께 건넨 싱싱한 유학 자금

 

 

굳은살로 터를 잡은 아버지의 긴 여운

 

좋아하는 두 아들과 살림 밑천인 딸 하나가 있는데

 

 

 

시민권을 받자 평양 좀 갔다 오라는 주문

 

잠을 잃고 낮의 연속을 길게 늘린 시간과의 싸움 끝에

 

미국 공군사관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불안을 자르고

 

평양을 거쳐 황해도 해주에서 만난 가족 상봉

 

 

 

미국에서 효녀가 왔다대서특필로 노동신문에 난 기사

 

아들들의 얼굴이 두려움과 함께 고통으로 다가온다

 

 

 

불효를 갚으려고 아버지의 한은 풀어드렸다 

 

가스라이딩 되었던 몫도 끝났다

 

 

 

네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 날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지문처럼 보인다

 

고향에 한 번 못 가고 서울에서 가는 진자리를 맞은 아버지

 

 

 

왜 아들로 낳지, 딸로 낳았냐고

 

아버지 날에 허공을 향해 처음으로 소리치자

 

짠 눈물이 아버지의 맛과 냄새로 흘러내리고

 

물기를 훔치자 만나러 가야 할 미래의 길인

 

 

 

나의 진자리가 보이는 듯 하다

 

2023년 아버지 날

중앙일보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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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저의 조부모와 아버지도 이북에서 피난오셔서 완전 공감이되네요.

    거기에 아들 낳으려고 허리춤에 도끼 차고 다니시던

    엄마의 소품을 갖고 있어요.

    에고 옛 분들의 고생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진자리가 아니고 짓무른 자리가 아닐런지요.

  • 에고 그 놈의 아들이 뭔지???

    가부장제 시대였으니...

    근디 중국이나 인도, 모슬렘들은 아직도 아들 아들 한다지요.

    딸들은 엎어버리기도 하구요.

  • 강화식글쓴이
    2023.6.20 12:17 댓글추천 0비추천 0

    왜 그리도 아들 선호 사상이 있었는지

    성년이 되서야 이해를 하게 되어 넘어가는 부분도 있지만

    어려서 모르고 받은 차별 때문에 정신이든 육체든 어느쪽엔

    금이 가 있지 않을까요? 상처는 낫지만 흔적이 보이는.....


필명 : 연선(康 娟 仙) 서울출생
1985년 미국 L.A이민. 2017년 죠지아주 애틀랜타로 이주
*2007년 (신춘문예)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 문학상 ‘당선’ - 시
*제 3회 해외풀꽃 시인상 (공주, 풀꽃문학관)
*문학세계 신인상 – 수필, *한국 미래문학 신인 작품상 - 시
*재미시인협회, 미주한국문인협회, 고원기념사업회 – 이사, 글마루 동인
*애틀랜타 문학회 (전)부회장
*애틀랜타 연합 장로교회부설 행복대학 문예창작반(글여울) 강사
*글여울 신인문학상 운영위원장
*한국어 교사 12년 역임 - 한국어능력시험TOPIK (남가주 한국학교, 웨스트힐스 한국학교)
*시집 - 텔로미어(꿈 꾸는 시앓이) *공동시집 - 물 건너에도 시인이 있었네.
*미주문학, 외지, 문학세계, 애틀랜타 시문학 – 계간과 년간으로 작품 발표
* 인터넷 신문 : 시인뉴스 포엠 – 계간별 작품 발표
*E-Mail : hwashik219@gmail.com Tel : 818-427-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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